[그 시절 우리는] ‘명카수’가 되는 길⑥ 서영춘과 무대에서 코미디 공연을 했다

  • 입력 2024.01.21 18:00
  • 수정 2024.01.21 18:4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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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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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라 극장 인근의 다방에서 ‘럭키 송’에게 무용수로 깜짝 발탁된 김미성(김미숙)은, 유명 연예인들이 포진한 공연단에 가담하여 순회공연에 나선다. 그런데 공연단이 이용하는 교통편에서부터 인기의 등급이 확연히 드러난다.

“멀리 부산 공연을 간다 치면 특별 게스트인 트위스트 김, 문희, 윤정희 이런 사람들은 그 시절에도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어요. 박재란 같은 유명가수는 평소에 여기저기서 개인 리사이틀을 개최하기 때문에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요. 우리 같은 무용수나, 이름 없는 만담꾼이나, 악단의 연주자들은 물론 버스를 타고 가지요. 공연을 미리 알리는 광고전단이나 현지의 극장 간판에도 그런 유명한 스타들의 얼굴은 한가운데에 크게 박혀있고 내 얼굴은 무용단 단체 사진으로 저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하는 오기도 생기고….”

언젠가는 보란 듯이 성공해서 광고지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가운데로 끌어 올리고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공연장에 가는 것, 그것이 지상목표였다는 게 김미성 씨의 회고다. 이때가 1975~76년 무렵이었다는데, 당시만 해도 오직 가수로만 성공해야 한다고 집착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코미디언이든 배우든 우선은 오직 유명해지고 싶었을 뿐이라고….

공연 전날 저녁, 인기 스타들은 제각기 예약해둔 호텔로 가고 무명들은 허름한 변두리 여관에 들었다. 초겨울이었으므로 여관 마당에 드럼통을 놓고 모닥불부터 피워야 했다. 한참 만에 방에서 나온 선배들이 후배들을 향해 저마다 한 소리씩 한다.

-아이고, 날씨 한 번 되게 춥네. 어이, 거기 밴드부! 모닥불 좀 미리 피워놓으라고 했는데 불이 왜 이 모양이냐. 여관 주인한테 장작 좀 더 달래서 갖다 넣고 활활 좀 피워보라고!

-야, 무용수들, 내가 양말 벗어서 내놓은 지가 언젠데 아직 안 빨았어!

그 시절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학교 선생님 그림자는 밟아도 선배님 그림자는 비켜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만큼 위계질서가 가히 군대 수준이었다고 얘기한다.

식사시간이 되면 김미성 같은 무명들은 어떻게든 유명스타의 옆자리에 앉아서 눈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자리다툼이 치열했다고도 얘기한다. 스타 연예인의 천거를 받아서 함께 공연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출세와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공연단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처우를 받는 쪽은 악단의 단원들과 무용수들, 그리고 무명가수들이었다.

무용단의 댄서로는 ‘출세’가 어렵겠다고 판단한 김미성은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그 결심의 배경에는 코미디언 이순주가 있었다.

“이순주의 남편이 당시에 순회공연단의 단장이었어요. 단장이다 보니까 공연단을 짜면서 구봉서, 배삼룡, 송해 이런 사람들을 자주 멤버로 초대할 것 아녜요. 이순주는 처음엔 쇼단에서 저와 함께 무용수로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남편의 권유로 코미디 쪽으로 전향을 했는데, 얼마 뒤에는 송해와 짝을 이뤄서 라디오로 진출을 한 거예요. 그러더니 그 유명한 ‘싱글벙글 쇼’의 진행을 송해와 함께 맡으면서 일약 스타가 된 거지요.”

그러면 그 시기에 쇼단의 순회공연에서 코미디언들은 어떤 내용으로 사람들을 웃겼을까?

-다음은, 코메디계의 대부 서영춘과 신인 코미디언 김미숙 양의 만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로 서영춘 선배님하고 처음 무대에 나갔어요. 그때 주고받았던 만담이란 게 이런 식이었어요. ‘선생님 이번에 해외 다녀오셨다면서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으응, 땅콩 옆에 있는 홍콩. 너는 어디 다녀왔니?’ ‘저는 이태리 옆에 있는 저태리 갔다 왔지요’…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안 웃기는데 그때 관중들은 그 정도의 유머에도 폭소를 터트렸어요. 간혹 동작을 거칠게 하다가 머리에서 가발이라도 벗겨지면 관중들이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다니까요. 정말이에요.”

김미성 씨가 동의를 구하려고 자꾸만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으므로 나도 대꾸를 해주었다.

“저도 70년대에 극장 쇼 구경한 적 있어요. 맞아요. 그거 저엉말이었어요.”

우리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서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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