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대파 수입에 무너지는 꿈

  • 입력 2024.01.21 18:00
  • 수정 2024.01.21 18:46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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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우리 지역의 겨울 주 작목은 마늘이나 시금치입니다. 윗녘보다 덜 춥기는 하지만, 한겨울의 쨍한 추위에도 풀과 함께 작물이 자라니 월동농사가 경쟁력이고 농민들의 주 소득원이지요. 강추위 예보가 있는 날에도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노는가? 일을 하지!’라는 듯 시금치 수확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코끝이 얼어붙는 쨍한 날씨에도 거침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숙연해집니다. 무엇이 저토록 움직이게 하는가? 이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싶고, 그리하여 오늘날 어느 분야에서나 고도의 생산력이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분배의 문제로 소득 양극화가 심한 것과 상관없이 말이지요.

그런 시금치, 마늘의 고장에도 가끔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금치농사의 변동성, 즉 월동농사가 되는 지역은 손쉽게 시금치농사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등락이 심합니다. 그러니 전년도에 가격이 비싸게 되면 다음 해에 여기저기서 시금치농사를 지어서 가격이 폭락하게 되고,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파종면적이 줄어들면 또 값이 오르기 마련인 것이죠. 그런가 하면 마늘은 노지작물 중에서도 생산비가 많이 드는 작목입니다. 씨마늘 값이 생산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문제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부담인 시금치농사나 마늘농사 대신 대파농사에 도전한 지역의 한 농민이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농사를 시도하는 데에 겁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신바람이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곤 합니다. 새로운 농사에 대한 공부와 시장조사의 내용을 한껏 고조돼 말하곤 하는데, 그 바람에 주변 사람들은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가령 고추농사를 한창 많이 할 때 고추가지를 최대한 벌이는 농법이랄지, 고추가지에 꽃이 3,000개 가량 피는데 실제 수확하는 것은 10분의 1도 안 된다, 한여름 고추농사는 물과 거름에 있다 등등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이웃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줍니다. 농학을 전공한 이력답게 확실히 깨우침이 빠른 편입니다. 원래도 일머리가 좋은 그가 공부까지 하니 가지고 있는 정보가 수두룩한 것이지요.

그런 그가 이번에는 대파사랑에 빠졌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시금치가 가격이 들쑥날쑥한 바람에 재미를 못 보고, 씨마늘도 비쌀뿐더러 파종이나 수확기에 노동이 집약되는 것이 부담되다보니,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대파에 눈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듣자하니 대파 주산지에서는 오랜 연작으로 지력이 다했는지 병충해가 잦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대파농사로 작목전환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여전히 시금치나 마늘농사를 선호합니다. 농기계나 농사정보 등 제반 조건을 따졌을 때 이전의 농사를 이어 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겠죠. 반면 예의 그 농민은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고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없기에 과감하게 대파농사로 작목전환을 시도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대파잎 끝이 노래지기도 해 주변사람까지 걱정이 되었는데, 칼슘부족과 고자리파리 피해를 이겨내고 새파란 대파밭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새로이 농사지은 밭을 건성으로 보는 듯 하면서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대파가 무슨 돈이 되냐” 하면서도 눈은 유심히들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대파농사가 비교적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경제력이 있으면 갈아타기도 하겠지요. 아마도 여타 한 지역에서 자리 잡은 농사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됐을 것입니다.

때마침 대파가격도 좋아서 다들 생각이 많아질 즈음, 정부는 가격안정을 위해 대파를 수입하겠다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주산지까지 가서 기술을 전수받은 노력과 대파농사로 농민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했던 꿈, 여타한 농사로 재미를 못 본 것까지 합해서 회복하고자 했던 가정경제까지 복잡했을 것입니다. 이러니 하늘 아래 새로울, 꿈을 꿀만한 그럴싸한 농사가 있을까요? 덩달아 애가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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