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이 살 수 있는 농촌, 곧 청년이 살고픈 농촌

  • 입력 2024.01.14 18:00
  • 수정 2024.01.14 18:39
  • 기자명 신수미(강원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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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미(강원 원주)
신수미(강원 원주)

2023년 연말과 2024년 새해를 지나면서 몇몇 모임을 다녔다. 단체 모임에 가게 되면 습관적으로 여성회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간부 중에 여성이 있는지 살펴본다. 짧은 경험을 통해 본 결과, 여성농민단체가 아닌 경우 농민단체의 여성간부는 여성부회장이라는 직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얼마 전부터 지역청년농민단체에서 활동하게 되어서 연말모임을 하는데, 스무 명 남짓 모인 인원에서 여성은 셋이었다. 청년농민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면 대부분 결혼을 한 경우가 많은데,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짓는 경우는 드물다. 아이가 아주 어리면 아내가 육아를 전담해야 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정도로 자란 경우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 농업 외적 수입을 담당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청년농민모임에 나가도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20대에는 남성들과 어울리는 것이 편했다. 남성들이랑 술 마시고 얘기하는 것이 더 재밌고 잘 통했다. 친한 여성 선배는 거의 없었고,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친한 여성 후배도 없었다. 그런데 30대를 지나면서 점점 남성들과 대화가 불편해지고 여성들과 얘기하는 것이 좀 더 편하고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졸업 후 다시 만난 여성 동기들과도 30대를 함께 보내면서 관계가 다시 돈독해졌다. 농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의 변화였다. 하여튼 여성들과는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신체적인 특징이나 생각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고, 결론을 단정짓기보다는 공감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농민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농업대학교를 다니면서 진로를 고민할 때, 미혼여성이 농사를 지으면서 활동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좀 암담했었다. 그때 우연히 여성운동을 하는 선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만나 얘기하는데도 내 심정을 이해해주었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서 왜 나에게는 이런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여성 선배가 주변에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그런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역에 내려와 의지하고 친한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이다. 물론 아주 많은 남성농민 선배님들이 계시지만 여성농민들과의 관계는 특별히 소중하다. 여성농민, 특히 청년여성농민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만나면 무조건 반갑고,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서로의 처지를 알기 때문에 금새 돈독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또래 여성을 단체나 모임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미혼인 경우에는 외부 활동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기혼인 경우에는 만나기가 어렵다. 여러 이유로 인해 단체 활동에 나오게 되는 것은 주로 남성이다. 그렇게 나는 또 대부분의 회원이 남성인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몇 안 되는 또래 농촌여성들이 만나 소통하고 의지하면 좋겠다는 것은 생각뿐이다.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지난 총선 공약들을 살펴보니 ‘청년농업인’을 키우겠다는 공약은 대부분 걸었지만, 농촌여성 관련 공약은 진보정당 외에는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청년이 살고 싶은 농촌은 여성이 살고 싶은 농촌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할 대답이 이것이다, 라고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농촌으로 오고 정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언니들과 동생들을 만나 사는 얘기와 농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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