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칼갈이는 판갈이

  • 입력 2024.01.14 18:00
  • 수정 2024.01.14 18:39
  • 기자명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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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새해 새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는 시기다. 농민들 역시 지난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 것인지 계획하고 있다. 2023년을 뒤돌아보면 농민들은 이상기후 속에 농사짓느라 힘겨운 1년을 보냈다. 더구나 정부 대책이 지극히 미비하고 일회성에 그쳐 농민들을 더 힘들게 했다.

한 해 농민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보면 낙담할만하다. 자연재해는 일상이 됐고 생산비는 폭등했으며 공정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쌀값, 폭락한 한우값 등 어느 하나 희망을 품기 어려운 실정이다. 농산물값에 대해 정부는 물가안정의 잣대로만 정책을 집행하다보니, 수입량 확대로 가격을 떨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저율할당관세(TRQ)다. 올해도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더 많은 TRQ 수입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1년의 농민들 고충이 올해도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농사만 지어 생계를 꾸리기 어렵고 생활까지 불편하다 보니 농사를 이어갈 후계인력이 줄어들 뿐 아니라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농촌에서 새로운 기운은 사라진 듯하다.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해다. 많은 정치인이 이합집산하고 본인이 속한 정당이 대안세력이 될 것이라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의 미래에 대한 답을 주는 국회의원 후보는 없어 보인다. 물가안정과 시장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농업정책 기조는 그대로 둔 채 농업의 미래를 묻는다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선거가 있는 해는 국민의 정치적 요구가 폭발하는 시기다. 농민들 또한 농민들의 요구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출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실천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모든 선거구마다 3~4인씩 나와 당내 후보로 뽑히기 위해 예비선거운동에 돌입했고, 본인이 본선 경쟁력이 있음을 만방에 홍보하고 있다. 지역에 맞는 공약과 계급·계층에 맞는 공약 등 공약의 홍수 속에 모든 것의 발전을 약속한다.

어려움에 처한 농업·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은 농민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면밀히 검토하고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전 국토에 넓게 흩어져 살고있는 농민들이 한 군데 모일 수는 없지만 농업·농촌·농민을 위한 의견을 모으는 시도를 한시도 잊은 적 없다.

농한기인 한겨울 많은 지역에서 ‘농민만의 의견’을 눈 뭉치 굴리듯 모아나가고 있다. 이는 장흥·강진·광주·나주·진주·창녕·옥천·논산·부여·예산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농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 마을 곳곳으로 내려가고 있는 농민들의 활동. 이름하여 칼갈이 좌담회, 칼갈이 봉사다. 마을에 찾아가 녹슨 칼도 갈아주고 변화를 요구하는 대화로 흩어져 있는 의견을 모으고 있다. 후보자별 지지하는 정당별로 흩어져 있던 의견을 ‘농업의제’와 ‘농촌의제’로 추리고 모든 농민이 정부와 국민에게 제시하는 정치적 요구로 칼끝을 예리하게 갈고 있다.

오는 4월 10일에는 범 농업계가 함께 판을 뒤집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인 먹거리 문제에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식량주권을 확립하고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농민들은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모으는 칼갈이 좌담회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칼갈이는 판갈이다.”

개방농정 중심에서 국가책임 농정으로 전환하며 식량문제를 외국에 의존하기보다는 식량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또 불가항력적인 자연재난에 보험보다 농업재해보상법으로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특히 10년 전 쌀값보다 못한 쌀값을 정부가 당연시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공정가격을 보장하고, 또 폭등한 농자재 가격을 농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총합한 농민 3법(농민기본법·양곡관리법·필수농자재지원법) 제정 운동을 계획하고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잘 뽑을 일이다. 농민들은 이미 양곡관리법을 거부당했다. 농민들의 요구를 또다시 거부한다면 이제 농민들이 거부하는 것이 수순이다.

칼끝을 벼리면서 판을 가는 농민들이 활짝 웃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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