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명카수’가 되는 길④ 쇼단에서 도망쳐 나오다

  • 입력 2024.01.07 18:00
  • 수정 2024.01.07 18:2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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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1959년 여름, 충청도 서산의 한 극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윽고 극장 입구에서 선전에 열을 올리던 악단의 연주자들도 공연준비를 위해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회를 보는 남자가 무대 중앙에 등장하더니, 다분히 신파조의 억양으로 공연 시작을 알린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서산 군민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름도 유명한 우리 삼천리 쇼단의 버라이어티쇼, 그 장엄한 막을 올리겠습니다!

팡파르가 울리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진다. 그 시절 전국의 극장에서 성행했던 그 ‘쇼’라는 이름의 공연은 촌극과 무용은 물론, 만담과 노래까지를 종합 구성한 이른바 버라이어티쇼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가령 제1부에서 ‘장화홍련전’을 해학적으로 구성한 한바탕 촌극을 펼치고 나면, 막간을 이용해서 만담꾼들이 나와서 재치문답을 하고, 이어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다시 무용수들이 나와서 한바탕 서양 댄스를 추는 방식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삼천리 쇼단이 자랑하는 명카수, 김미숙 양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시겠습니다. 김, 미, 숙!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 김미성이 김미숙이라는 예명으로 소개되어 마이크 앞에 선다.

“저보다 앞 순서로 ‘장화홍련전’을 촌극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정극(正劇)을 흉내 내서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재미없어해요. 가능하면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해학적으로 비틀어서 보여줘야 웃음이 터지고 박수가 나와요. 그다음 순서로 제가 올라가서 ‘봄날은 간다’를 부르지요. 당연히 앙코르가 나오게 돼 있고, 그럼 한두 곡을 더 부르고…. 그다음에는 무용수들이 종아리 정도를 드러낸 짧은 치마 차림으로 나와서 댄스를 하고….”

비록 지방 극장에서 가진 쇼 무대라고는 해도, 수백 명의 관객들 앞에 처음으로 섰을 때 떨리거나 겁이 나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김미성 씨는 천만의 말씀이란다.

“어린 시절에 걸핏하면 수업도 땡땡이치고 극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유명 가수나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봐와서 그런지 별로 안 떨렸어요. 더구나 단장님이 평소에 저를 자기 친척이라고 소개하고 격려를 해주셨기 때문에, 우선은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하지만 지방 순회공연이 거듭되면서 김미성은 자신이 몸담았던 ‘삼천리 쇼단’에 회의감이 들더라고 했다. 말이 쇼단의 전속 가수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출연료나 급여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신인이라 일정 기간 무급으로 경험을 쌓을 각오는 돼 있었으나, 문제는 가수라고는 무명신인인 자신 한 사람밖에 없는, 매우 영세한 단체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김미성은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고백한다.

‘명카수가 되겄다고 집을 나왔는디, 여그는 뭐 라디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은 한나도 없고…암만 생각해도 안 되겄다. 보따리 싸 갖고 서울로 도망을 가부러야제.’

쇼단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김미성은 야반도주를 결심한다. 당당하게 그만두겠다고 통보를 하고 나올 수도 있었으나, 단원들에게 미안해서 그렇게는 못 하겠더라고 했다.

-자, 오늘 모두 수고들 했어. 다들 저녁 식사하러 가자구. 이봐, 우리 전속 가수 김미숙이! 너는 노래만 부르면 밥 안 먹고도 배가 부른 모양이지? 어서 가자.

-예, 지는 노래 몇 곡 부르고 났듬만 배가 겁나게 불르요. 몬침 가서 진지들 잡숫고 있으면 나중에 가께라우.

당시 그가 속한 쇼단은 천안에서 공연 중이었다. 김미성은 단원들이 저녁을 먹으러 간 틈에 보퉁이를 챙겨 들고서 천안역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도둑 기차를 타야만 했다.

“극단사람들한테서 공짜로 기차 타는 요령을 들었었든요. 개찰구를 피해서 일단 열차에 오른 다음에, 기차 안에서 표 검사하러 나오면 화장실로 들어가서 피하고….”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상경 열차를 탄 것은 아니었다. 중학 졸업하거든 스카라극장 옆 다방으로 찾아오라던 옛 악단장의 얘기를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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