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 실현’ 표방하며 제3세계에 고위험 농약 떠넘기는 EU

  • 입력 2024.01.05 15:10
  • 수정 2024.01.07 18:32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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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유럽연합(EU)이 기후위기 대응계획인 ‘EU 그린딜’ 속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F2F)’ 전략을 통해 EU 내에서의 유기농업 확대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EU에서 사용 금지된 고위험 농약 관련 수출 규제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농작물을 수확 중인 프랑스 농민. 프랑스 외무부 제공
유럽연합(EU)이 기후위기 대응계획인 ‘EU 그린딜’ 속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F2F)’ 전략을 통해 EU 내에서의 유기농업 확대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EU에서 사용 금지된 고위험 농약 관련 수출 규제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농작물을 수확 중인 프랑스 농민. 프랑스 외무부 제공

유럽연합(EU)의 기후위기 대응계획인 ‘EU 그린딜’ 속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 F2F)’ 전략은 그동안 친환경농업 확대와 관련해 ‘해외 모범사례’로서 국내에서 자주 거론됐다. 그러나 그 실상은 사실상 ‘EU에서 사용 금지된 농약을 제3세계로 떠미루기’에 가깝다.

EU F2F 전략은 2030년까지 4대 목표로서 △유기농업 면적을 전체 농지의 25%로 확대 △화학 살충제 사용량 50% 감소 △비료 사용량 20% 감소 △동물약품 사용량 50% 감소를 내걸었다. 전략 속의 행동계획 23가지 중에는 △학교급식에서의 유기농산물 공급 비율 늘리기 △탄소발생 감축 농업 및 유기종자 지원 △농민 기술지도 △새로운 농자재 제조를 위한 성분 개발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EU는 F2F 전략의 실현을 위해, EU 내에서의 고위험 농약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바이엘·바스프·신젠타 등 주요 농약기업에서 생산한 고위험 농약제품 다수는 EU 내에서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문제는 EU가 해당 고위험 농약들의 ‘EU 내 사용’은 금지하나 ‘EU 밖’, 특히 제3세계 국가들에 수출되는 것은 사실상 허용한다는 점이다. EU 내의 유기농업 확대를 위해 EU 바깥 제3세계 국가로 농약이 흘러가게끔 방조·묵인하는 것이며, EU 국가들 스스로는 세계 속에서 ‘유기농업 실천 모범사례’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정작 다국적 농화학기업들의 고위험 농약을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 대륙 내 국가들로 떠넘기는 것이다.

2018~2019년 EU와 영국은 건강과 환경상의 위험 때문에 사용을 금지한 농약 14만908톤의 수출을 승인했다. 또한, 독일 기업 바이엘과 바스프는 EU에서 허용되지 않는, 활성 성분(즉 농약으로서 독성을 활성화시키는 성분)이 포함된 농약 제품을 제3국에 판매 중이다. 2020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해당 기업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서만 최소 28개 활성성분이 포함된 자체 제품을 판매했다.

브라질에선 2019년 수입 제품 중 EU가 더 이상 승인하지 않는 14개 이상의 고위험 활성성분 포함 농약 제품이 있었다. 그중엔 벌의 생명을 위협하는 피프로닐(바스프 개발), 사람의 신경을 손상시키는 클로르피리포스(아센자 아그로), 높은 독성을 지닌 시아나마이드(알츠켐), 성기능 및 생식 능력을 손상시킨다고 알려진 프로피네브(바이엘) 등이 있었다.

케냐에서도 아트라진(신젠타), 트리클로르폰(바이엘), 피프로닐 등 EU에서 허용하지 않는 활성성분 51가지를 포함해 230가지 활성성분이 허가됐다. 또한, 남아공에선 2021~2022년 벌에 해로운 이미다클로프리드 등의 활성물질이 독일·프랑스 등의 EU 국가로부터 수입됐다.

특히 아프리카에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 미국 자본가들이 관여하는 ‘아프리카녹색혁명연합(AGRA)’을 통해, 아프리카의 ‘녹색혁명’을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녹색혁명이 농산물 생산량 증대 측면에서 의미가 없진 않으나, 외국 자본 개입 하의 ‘농산물 증산’을 위해 바이엘·바스프·신젠타 등에서 개발한 농약이 대량으로 아프리카에 유입되고,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생태계 및 농민 건강을 위협할 고위험 농약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EU의 고위험 농약 수출 미규제, 이 상황을 이용한 다국적 농화학기업들의 고위험 농약 수출은 제3세계 농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일례로 볼리비아에서 사용하는 농약의 70% 이상이 고위험 농약이며, 2010~2020년 동안의 농약 사용량은 6배 폭증했다. 또한, 볼리비아 내 50% 이상의 소농이 농약 살포 때, 또는 살포 직후부터 농약 중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참고자료 : 하인리히 뵐 재단, <농약 아틀라스>(작은 것이 아름답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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