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따라와라. 바람은 내가 막아주마”

  • 입력 2024.01.07 18:00
  • 수정 2024.01.07 18:28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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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세상사 쓸쓸하더라(1872)

시험에 잘 나오는 시제를 논하는 것으로 학업이 끝났다. 그런데 어려서 끝낸『소학』한 구절을 송진사가 시조창 하듯 읊었다.

“내칙 왈(內則 曰) 자부효자경자(子婦孝子敬者)는 부모구고지명(父母舅姑之命)을 물역물태(勿逆勿台)니라. 약음식지(若飮食之)어시든 수불기(雖不嗜)라도 필상이대(必嘗而待)하며 가지의복(加之衣服)이어시든 수불욕(雖不欲)이라도 필복이대(必服而待)니라. 희옥이가 말하여라. 무슨 뜻이냐?”

희옥이도 의외였는지 주저하더니 대답하였다.

“『예기』의 내칙에서 이르기를 부모와 시부모를 공경하는 아들 며느리는 웃어른의 명을 거역하지 않으며 태만히 처리하지도 않는다. 부모가 음식을 먹게 하면 그만하라 할 때까지 맛보며 옷을 입으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만하라 할 때까지 입는다……. 위에서 음식과 의복을 내리면 일단 먹고 입어 호불호를 살펴 말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부(子婦)는 무사화(無私貨)하며 무사축(無私蓄)하며 무사기(無私器)니 불감사가(不敢私假)하여 불감사여(不敢私與)니라. 다시 답하여봐라.”

“아들 며느리는 사사로이 물건을 사고팔지 않으며 사사로이 축재하지 않고 사사로이 기물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사사로이 남의 물건을 빌리지 못하고 사사로이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 교역을 하거나 재산을 축재하는 일이며 돈을 빌리거나 남에게 주는 일은 집안 어른의 통솔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희옥이의 대답은 그야말로 모범답안이니 『소학』을 해석한 집해(集解)까지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송진사의 시선이 병호를 향하였다.

“병호 네 생각은 어떠냐? 다른 뜻이 있느냐?”

병호는 사이를 두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을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송진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여 어버이께서 자식을 돌보지 않고 남의 물건을 예사로 훔치며 예에 어긋난 일마다 행하면 어찌하오리까?”

“고얀 놈! 예서 말하는 어버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으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망측한 사례를 대어 뜻을 비트니 선각들을 욕보이려는 생각인 게지.”

“선량하고 아름다운 말씀이라 믿고 따르지만 층위를 지어놓고 사람을 가둘 요량이면 그 말씀은 고쳐야 하는 것입니까, 폐기해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부모를 임금이나 국법으로 볼 여지도 있을 터인데 경국대전은 과연 여항의 백성을 위해 쓰인 것인지요?”

“늬 말대로라면 윗사람과 반대로만 행해야겠구나.”

“마음에서 솟아난 의문 때문에 괴롭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경학이 돌이킬 수 없는 신분을 정해놓고 말없이 복종하게 하는 학문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윗사람 말을 충실히 따른다 하여 어찌 백정이 좌상 우상이 되겠습니까?”

송진사가 손바닥으로 서안을 쳤다.

“매를 쳐도 굴하지 않고 다리를 부러뜨린들 굴할 네가 아니니 항차 너는 무엇이 되려느냐? 나라의 동량이 되어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으라는 말이 그리도 못마땅하더냐? 스승인 내가 네놈에게 빌기라도 하랴?”

스승의 마지막 말은 분노가 아니라 애원처럼 들렸다. 가슴에 숭숭 바람이 드는 것 같아 병호는 납작 조아렸다.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노여움을 거두어주십시오.”

송진사는 무언가를 눌러 가두는 소리로 일렀다.

“이것을 가져가거라.”

그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스승이 건넨 종이를 받았다. 향시에 관한 일정이 적혀 있는데 좌도는 담양, 우도는 무장에서 치른다는 내용이었다. 시험은 이월 말일로 예정돼 있으며 종이에는 조흘강(照訖講)에 관한 일정도 기재돼 있었다. 학습은 뒷전인 채 뒷배만 믿고 응시하는 폐단 때문에『소학』한 곳을 고강하게 한 후 조흘첩을 발급하는 제도가 조흘강이었다. 세도가의 자제들이야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병호는 뒷배도 없으려니와 있대도 원칙대로 할 위인이라 놓치지 말라고 일시에 비점까지 찍어놓고 있었다. 병호는 송진사가『소학』한 구절을 언급한 연유가 그 때문임을 깨달았다.

“너는 작년의 태인과 전주 백일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과장에선 눈살 찌푸릴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비는 바윗돌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법이다. 실력 발휘만을 염두에 두거라.”

병호와 희옥이가 밖에 나서자 높바람이 옷자락을 감았다. 눈이 치려는지 해는 보이지 않았고 먼지 타 지저분해진 눈만 고샅에 쌓여 있었다.

“조카님하고는 미리 만났을 테니 봉상으로 갈 테여?”

병호가 묻자 희옥이가 수염 새로 이를 드러냈다.

“기범이한테 가서 한잔한다면 좋지.”

“그 말을 하려던 게야.”

눈이 쌓여 상두재는 넘지 못할 것을 알고 둘이는 솟튼재에 올랐다. 우도에서 한양에 닿으려면 솟튼재를 넘어야 하므로 그곳은 나라의 근간이 되는 대로였다. 솟튼재라고 눈이 녹았을 리 없지만 사람들 왕래가 잦아 길을 놓칠 염려가 없었다. 새벽에 송진사네를 향할 적에는 암만 걸어도 길이 줄지 않더니 희옥이와 함께 넘자 엘 듯한 추위라도 견딜 만하였다.

“말을 잘 들어도 백정은 영의정이 못 된다는 말 나도 공감한다.”

솟튼재 내리막에서 희옥이가 미끄럼을 타면서 말하였다.

“영의정이 아니라 좌상 우상이라고 했다.”

“실없는 소리. 촉한의 장수 위연(魏延)은 목덜미에 반골이 솟았다던데 네 뒷덜미도 만져보고 싶다. 어째 경서를 그렇게 읽는다니?”

“아내를 묻고 온 기범이가 불경과 노자를 뒷간에 뒀지 뭐야. 열심히 읽었지.”

희옥이가 히힝 이상한 소리를 냈다.

“넌 기범이의 내자가 눈을 감기 전부터도 그랬다. 너희 집안이 세도가에게 논이라도 빼앗겼니?”

“넌 양이에게 빼앗긴 것도 없는데 어째 병인년 얘기에 방구들을 쥐어 팼게?”

“너에게 물든 탓이지. 그게 같니?”

“같지 않고. 배고프다. 태인에서 요기하고 가자.”

그들은 태인 관아 밖 주막에 들어가 국밥을 시키고 화주로 속을 데웠다. 기범이와 마실 화주를 품고 동진강을 따라 걷자니 바람막이도 없는 들판이라 몸이 휘청거렸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고는 폭설로 변하였다. 자욱한 것이 천지를 메우자 들과 산이 구분되지 않았고 밭과 길도 두루뭉술해졌다. 희옥이가 걸음을 재촉하여 앞에 섰다.

“뒤에 따라와라. 바람은 내가 막아주마.”

병호가 픽 웃으며 옆에 붙었다.

“네가 뒤에 붙어라.”

“네 뒤에 서면 가슴부터는 고스란히 빈다. 남 클 때 뭐했누?”

들길을 따라 고현면에 접어들 무렵엔 귀든 뺨이든 감각이 없었다. 눈을 뭉쳐 우적우적 깨무는 희옥이에게 바람을 이기려고 병호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고창에 살 때 이웃 마을에 놀러 갔다가 양반에게 작대기찜을 당했어. 초계변씨 집성촌인데 퇴계 문하의 자손이라고 자부심들이 대단했지. 하지만 그 거들먹거림이 싫어 법변(卞)이 아니라 길가변(邊)으로 성을 바꾸라고 해버렸어. 그런데 마을 양반 하나가 그 소릴 듣더니 다시 해보라지 뭐야. 못돼먹은 성미에 그대로 말해줬지. 매 맞아 피멍 든 종아리를 보신 아버님이 그날 밤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반죽음이 되셨더라구. 한바탕 하셨던 게지.”

“그래서 어쨌는데?”

“어쩌긴 뭘. 그랬단 거지. 그나저나 설을 쇠었으니 스물둘인데 조카님은 어째 혼인하지 않는 게야? 양녀라고 소홀히 하는가?”

“아재비라도 나이 많은 조카에게 그를 물을 수 있나. 혼담이 있었지만 조카가 거절했다고만 들었네.”

동곡마을 지나서 희옥이는 기범이네 집에 들고 병호는 제집 삽짝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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