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84 - 최종]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 입력 2023.12.24 18:00
  • 수정 2023.12.24 19:05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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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8년 전인 2016년 2월, 30여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을 떠나 양양으로 내려왔다. 평생 농업이 소중하고 농촌지역을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구하고 강의해 왔으니, 이제 은퇴한 후에는 농촌지역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고 직접 농사지으며 농민으로 살기로 작정했다. 평생의 연구대상인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객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로 체내화해 인식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작정은 했으나 50여년 간 익숙해진 도시에서의 삶의 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더군다나 농사를 직접 짓는다는 것은 전원주택에 딸린 조그만 텃밭농사를 지어 본 것이 전부인 내게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무엇보다 친환경 농업을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대로 친환경 농사를 지어야 함은 당연한데,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학술적으로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연구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며 평가만 해온 내가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농사짓는 농민으로 인생 후반부를 살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농사의 소중함과 가치를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한국농정신문의 심증식 전 국장이 이제 막 시작한 농촌생활과 농사짓는 이야기를 ‘농사일기’로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앞으로 익숙지 않아 갈팡질팡할 것이 뻔한 농촌지역에서의 생활과 농사짓는 얘기를 느끼는 대로 써보라는 것이었다. 망설였으나 좋은 기회를 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사과를 생산하기까지는 묘목을 심은 후 3년 정도 걸릴 것이니 좌충우돌할 3년 정도만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기농 사과농사는 생각보다 어려워 실패와 착오를 거듭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8년 만인 올해에야 겨우 사과다운 유기농 사과를 생산할 수 있었고 판매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유기농 사과 생산과정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농사꾼이 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겨우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는 의미다. 아기들도 1년 정도면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나는 8년이나 걸렸으니 참 오래도 걸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처음 마음 먹었던 것처럼 농사일기도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접으려 한다. 8년여 동안이나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일상과 사색들을 농사일기로 남길 수 있도록 귀중한 지면을 내어 준 한국농정신문의 사장님과 국장님, 그리고 기자님 등 모든 직원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슬프게도 먼저 우리의 곁을 떠난 심증식 국장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동안 저의 농사일기를 기다려 주시고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농사일기 연재를 마친다고 해서 농사짓는 것까지 마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최근 건강이 썩 좋지 않아 걱정이긴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초보 농사꾼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은 유기농 사과 농사를 계속 지으려 한다. 그동안 함께 해 주신 독자들과 한국농정신문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의를 표한다.

여러분,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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