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지 위의 욕망들

  • 입력 2023.12.17 18:00
  • 수정 2023.12.19 18:04
  • 기자명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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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법은 누군가의 욕망을 반영한다. 법에 등재된 권리는, 특정한 욕망의 실현을 보장하겠다는 국가 권력의 선언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을 보장한 것이 헌법상의 행복추구권이다. 억압당하지 않은 채 거주하고 말하고 사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을 보장한 것이 갖가지 자유권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이가 동의하는 욕망에 바탕을 둔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만 있는 게 아니다. 한 가지 대상을 두고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법을 만들거나 바꾸거나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문제가 자주 생긴다. 입법자는 어떤 이유로 누구의 욕망을 선택해야 하는가? 골칫거리다.

농지만큼 그런 문제를 첨예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별로 없다. 서로 다른 강렬한 욕망들이 농지 위에서 그리고 농지 관련 법령의 문자들 사이에서 부딪힌다. 여러 주장이 저마다 나름의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공익과 공익이 부딪히는 기이한 일인데, 실은 ‘명분상 공익들’의 밑바닥에서 욕망들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 이면의 욕망들을 살펴보는 게 유익할 수도 있겠다.

먼저 명분들을 살펴보자. 첫째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121조 1항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소급되는 ‘농지소유 규제 완화론’이 있다. 그 명분은 농지 거래를 촉진해 농지 소유자인 농업인의 재산권을 보장하자는 것에서부터, 자본과 테크놀로지를 갖춘 기업이 농업 부문에 진입하도록 만들어 한국 농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럿이다.

둘째 한정된 국토 중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는 농지를 농업 아닌 용도로 쓸 수 있게 하자는 ‘농지전용 규제 완화론’이 있다. 주택이나 산업단지나 태양광 발전 단지를 개발하면 같은 면적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데, 지금의 법령은 농지전용을 쉽게 할 수 없게 만들어 제한된 토지의 효율적 활용을 가로막는다는 꼴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농지규제 완화불가론’이 있다.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먹거리 보장(food security)을 위해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 농민의 농지이용(또는 소유) 접근성을 높여 낮은 토지생산성 조건에서도 일정한 농업소득을 얻을 수 있는 규모 확대를 촉진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농지 가격을 높일 수 없다는 명분이 있다. 청년들의 농업 진입을 촉진하려면 저렴한 비용으로 농지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농지를 보전하고 농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사적(私的) 욕망을 온전히 비우고 오직 공익만을 생각하면서, 농지규제 완화론을 외치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리라. 독심술을 익히지 못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웬만한 사람이라면 쉽게 동의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농지규제와 관련된 주장들 대부분은 밑바닥의 사적 욕망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어떤 욕망인가? ‘농지의 교환가치’에 대한 욕망이다. ‘부동산 불패(不敗)의 신화’는 깨지지 않았다. 외려, 금융시장과 대도시 주택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갈 곳 없는 돈들이 농촌으로 점점 더 빨리 흘러들어 온다. 그동안 농지전용 규제는 성공적이지는 못했을지라도 농지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농지소유 규제는 농지 위에서 생산적 활동을 수행하지 않고 소유한 것만으로도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를, 역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차단했다. ‘농지의 교환가치’에 대한 욕망이 그런 규제들을 겨냥하고 있음은 다들 아는 일 아닌가?

농지의 교환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욕망은 농업적 사용가치 증진을 원하는 욕망과 충돌한다. 국가는 개인의 욕망 자체를 억제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억제할 수도 없다. 국가가 법령으로 이룰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어느 한쪽을 온전히 편들거나 부분적으로 타협함으로써 ‘욕망의 결과’를 조절하는 것뿐이다. 어떤 욕망을 편드는 게 좋을까? 이 짧은 지면에 상설하기는 어렵다. 다만, ‘토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에의 욕망’에 날개를 달아 준 결과가 어떠한지는 농지가 아닌 다른 일에서도 우리가 이미 경험한 바 있음을 상기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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