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노동자 죽어간 학교 급식실 … ‘급식로봇’으로 채우나?

경기 모 고등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인한 장기 투병 끝에 운명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 “피해자 지원, 학교 급식실 환경 개선 절실”

  • 입력 2023.12.12 16:25
  • 수정 2023.12.15 09:3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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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6일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앞에 설치된, 급식노동자 고(故) 이모씨의 임시 분향소에서 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이 조문하고 있다. 13년간 급식노동자로 일해 온 이씨는 지난 4일 폐암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지난 6일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앞에 설치된, 급식노동자 고(故) 이모씨의 임시 분향소에서 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이 조문하고 있다. 13년간 급식노동자로 일해 온 이씨는 지난 4일 폐암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또 한 명의 학교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급식노동자들,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먹거리운동단체들은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폐암이 엄연한 ‘산업재해’임을 언급하며, 더 이상 노동자가 죽어가지 않도록 할 근본 대책을 다시금 정부·지자체에 촉구 중이다.

지난 6일, ‘학교급식노동자 폐암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는 한 급식노동자의 운명 소식을 전했다. 경기도 성남시 모 고등학교에서 13년 9개월간 급식 조리업무에 종사했던 노동자 이모씨는 2020년 6월 8일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뒤, 2021년 5월 4일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에 폐암 산재 승인을 신청했다. 그의 산재 승인 신청은 1년 7개월간 인정받지 못한 채 계류됐다가, 지난해 12월 15일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 앞에서 이씨가 학비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진행한 기자회견 뒤에야 승인됐다. 이씨는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대책위는 고인을 추모하며 “그동안 노동조합(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전국교육공무직본부 등)은 전면적인 급식실 환경 개선, 인력 충원 등을 외쳐왔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미온적이고 지지부진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며, 처음으로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사례(수원시 권선중학교 등지의 급식실에서 12년간 일하다가 2018년 폐암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사례)가 드러난 경기도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사망했음을 언급했다.

지난 6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위원장 박미향, 학비노조) 경기지부(지부장 최진선)는 이씨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앞에 설치하고자 했다. 이때 교육청 측은 분향소 설치를 막으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야외 바닥에 차린 임시 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되고, 분향소를 지키던 최진선 학비노조 경기지부장 등이 연행되는 불상사도 있었다. 다행히 지난 10일 학비노조 경기지부와 경기도교육청 간 합의가 성사돼 교육청 지하 1층에 분향소가 설치될 수 있었다.

학비노조 측은 경기도교육청이 급식실 노동환경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최진선 지부장은 “교육청은 환기시설 개선, 폐암 검진 대상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종합계획을 내놓긴 했으나, 근본적인 폐암 확진자 지원대책이나 급식실 노동환경 전반의 개선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이와 관련해 교육청의 구체적 보상대책을 요구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며, 폐암 확진자들에 대한 직종 전환 등 구체적 지원대책을 추가적으로 협의하자고 요청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학비노조 경기지부는 오는 21일 경기도 급식노동자대회를 열어 급식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한다.

한편으로 그토록 많은 학교급식 관련 법·조례 중 급식노동자의 건강권을 규정하는 장치가 단 하나도 없다는 문제 인식 아래, 학비노조는 급식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 제정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급식로봇, 급식노동자 노동을 ‘대체’해선 안 돼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친환경학교급식 경기도운동본부 등 먹거리운동단체들은 지난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씨의 명복을 빈 뒤, 교육부(장관 이주호)와 각 교육청이 즉시 △조리실 환경개선 △인력 추가배치 등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급식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의 뜻을 표했다.

해당 단체들은 “급식노동자 폐암은 튀김·볶음요리 등의 조리 과정에서 생긴 조리흄(초미세입자)이 주요 발암 요인으로 확인되는 상황에서, 우선 환기구를 비롯한 급식시설의 전면적 검사와 개선을 촉구한다”고 한 뒤 “실제 현장에선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환기구 시설에서 연기 자욱한 조리 과정이 발생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튀김·볶음 조리법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은 물론 급식노동자의 건강까지 해치는 식단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급식현장 일각에선 ‘푸드테크’의 일환으로 급식로봇의 시범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원장 손웅희)과 함께 성북구 숭곡중학교에서 ‘급식 로봇 팔 공개행사’를 열었는데, 이 행사에서 로봇 팔은 국을 끓이고 튀김 요리를 하는 등의 시범 급식을 진행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구희현 친환경학교급식 경기도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최근의 열악한 급식실 노동환경을 고려할 때 ‘급식로봇’의 활용이 급식노동자를 보호하고 고용안정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선 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급식현장이나 급식관계자들의 우려도 존재할 수 있으니 참여와 소통 속에서 (급식로봇 도입 계획을) 보완·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급식로봇이 급식노동자의 지속가능한 노동에 ‘기여’해야지, 급식노동자의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는 뜻이다.

구 상임대표는 “‘학교급식은 교육이며 맛은 정성에서 나온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면 AI(인공지능) 기계에 식단과 조리, 밥상머리 교육을 맡기는 일이 전면화될 시 ‘사람’과 ‘교육’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며 “급식로봇 확충예산을 늘리는 것보단 급식실 조리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급식실 인력을 현실에 맞게 배치해 노동강도를 줄이는 일이 학생과 급식노동자의 만족도를 지속가능하게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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