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⑧ 이승만과 우장춘이 키웠던 ‘워싱턴야자’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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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남산 식물원 아래쪽에는 자그마한 규모의 동물원이 있었다. 남산공원 관계자들은 이 동물원을 소동물원(小動物園)이라 불렀다. 그 호칭이 굳어져서 ‘남산 소동물원’이 공식 명칭이 됐는데, 아마도 서울에 있었던 큰 동물원(창경원)을 의식하고 붙인 이름이 아니었을까?

“식물원을 개관하고 나서 3년여가 지난 1971년에 문을 열었는데, 처음엔 30여 종 230여 마리쯤 됐을 거예요. 그 중엔 꽃사슴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도 있었으나, 원앙이나 공작 등 새 종류가 많았어요. 부모가 아이들 데리고 오거나 혹은 단체로 소풍 온 아이들이 식물원을 관람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동물 구경도 할 수 있게 한 것이지요. 식물원과는 달리 동물원은 관람료를 따로 받지 않았으니까 남산에 올라온 사람이면 누구나 구경할 수 있었어요.”

최상인 식물원장의 얘기다. 이제 다시 식물원 얘기를 해 보자. 남산 식물원 1호관이 파월 장병들이 채집해서 보내온 열대식물 위주로 채워졌다면 2, 3, 4호관은 한 재일동포가 마련해서 보내준 선인장들로 채워진 ‘선인장관’이었다.

“70년대만 해도 시민들에게 선인장은 아주 낯선 식물이었어요. 거기다 종류도 다양하고 꽃도 갖가지 색깔로 아주 예쁘게 피잖아요. 처음 본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면서 신기해했지요.”

내가 취재 갔을 때 남산 식물원 1호관에는 키가 10미터가 넘는 열대식물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학명으로 ‘워싱턴야자(Washingtonia filifera)’다. 이 야자수가 식물원으로 흘러들어온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서울시청으로부터 식물원에 전화가 걸려온다.

-서울시청 최 과장인데요, 귀한 선물을 하나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워싱턴야자’라는 야자수 나문데…이승만 대통령과 우장춘 박사의 손때가 묻어 있는 아주 귀한 식물입니다.

애당초 그 워싱턴야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경무대에서 화분에다 키우다가, 부산 원예시험장으로 보내서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에게 키우도록 했다. 화분에 있던 야자수를 노지에 옮겨 심자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뒷날 원예시험장이 부산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그 나무도 함께 옮겨왔는데, 어느새 키가 5미터가 넘었기 때문에 그 나무가 들어갈 온실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남산 식물원에서 키우게 하려고 서울시에 기증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식물원 온실로 옮겨오고 나서도 자꾸 키가 자라는 거예요. 어느 날엔가는 관리하던 직원이 그 워싱턴야자가 온실 천장까지 닿아버렸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별수 있나요. 온실 천장을 개조해서 높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높여놓은 그 천장 꼭대기까지 또 자라버렸어요.”

내가 찾아갔을 때(2002년 여름) 최상인 식물원장은 정년퇴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는 30여 년 동안 자식처럼 돌봐온 식물들을 두고 떠난다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 겨울밤에 숙직하던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갑자기 정전이 돼버렸다는 거예요. 바깥 기온이 영하 6도였으니까 자칫하면 열대 식물들 다 죽일 판이었지요. 부랴부랴 달려가서 땔감 가져다가 온실 통로에다 불을 피웠는데, 문을 못 열게 하니까 모두 기침을 콜록거리고 야단이 났지요. 그 일이 잊히지 않네요.”

최상인 원장이 퇴임하고 나서 4년이 지난 2006년에 남산의 식물원과 동물원이 모두 역할을 다하고 철거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산의 팔각정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면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나무가 우거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타워에 올라가지 않는 한, 남산 꼭대기에서 서울 시내 풍경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무성해졌다. 뿐만 아니라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으로, 흉물처럼 서 있던 외인아파트도 사라졌다. 그리고 남산을 그냥 남산이라 적지 않고 따옴표를 매겨서 ‘남산’이라고 적었을 때 상징되던…인권유린의 음습한 공간이었던 중앙정보부도 퇴거 되었다.앞으로도 시민들은 끊임없이 남산을 찾을 것이고, 남산은 찾아오는 그들을 예전보다는 조금쯤 달라진 모습으로 품어 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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