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83] 영농일지 2023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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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매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영농일지를 쓴다. 친환경 인증기관에서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사일이란 매년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이어서 날짜별 영농일지는 농사짓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귀농한 해는 2016년이지만 농사를 조금씩 시작한 해는 2015년부터였다. 귀농하기 1년 전부터 친환경 농사를 위해 시간 될 때마다 내려와 토양개량을 위해 퇴비나 석회고토 등을 뿌려 주기도 하고 녹비 작물을 파종하기도 했다. 그러니 귀농한 지는 8년 차이지만, 영농일지는 금년이 9년 차이다.

그래서 문득 9년 차 영농일지를 펴놓고 주요 농작업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 금년의 첫 농사일은 2월 6일 동계 전정과 측지 유인작업이었다. 3월 20일엔 친환경 기계유제를 40대 1의 농도로 흠뻑 살포하였다. 꽃눈이 움트기 전에 기계유를 살포하면 충의 개체 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4월 1일에는 동계유황방제를 실시했는데 자닮유황과 자닮오일을 이용하였다. ‘내년에는 3월 중순 이전에 살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소감이 적혀 있었다. 4월 7일에는 고삼 삶은 물로 만든 청충불패와 비티투라는 살충제를 살포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혹진딧물을 방제하기 위함이고 여름과 가을에는 갈색날개매미충, 선녀벌레 등 온갖 벌레들을 방제하는 친환경 유기약제이다. 유기약제는 약효가 약하기 때문에 여러 번 살포해야 하는데 금년에는 총 15회 살포하였다. 1, 2주 간격으로 살포해야 한다. 4월 12일에는 유산균 미생물을 200대 1의 비율로 물에 타서 토양에 관주하였다. 우리 농장 사과 발효액과 기술센터에서 제공하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10여 차례 토양에 살포해 준다. 4월 13일엔 예초를 했는데, ‘사과 꽃이 날이 차가워 좀 늦게 핀다’고 적어 놓았다. 금년에는 예초를 일곱 번 했다. 4월 17일에는 결과지 유인과 적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2, 3주에 걸쳐 지속적으로 해주었다. 4월 25일에는 유기농인증을 위한 토양검사를 기술센터에 의뢰했다. 과수원 흙을 잘 섞어 한 삽 정도를 봉지에 넣어 센터에 가져다주면 무료로 해준다. 금년에는 4월 26일에 혹진딧물이 발생했는데, ‘좀 더 일찍 사과꽃 피기 시작할 때부터 적극 방제해야 할 것 같다’고 메모해 놓았다.

5월 24일에는 유기농인증신청서류를 강원대 친환경인증센터로 발송하였다. 금년도 인증비는 47만원 정도였다. 5월 25일엔 조생종에 봉지 씌우기를 실시했다. 보통 수확하기 너댓 달 전 쯤에 실시하고 한두 달 전에 겉봉지를 벗겨 주며, 2, 3주 전에 속 봉지를 벗긴다. 유기농 사과 생산을 위해서는 필수작업이다.

6월 16일에는 금년 처음으로 석회보르도액을 살포하였는데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꼭 실시해야 한다. 금년에는 균병이 심하여 9월 22일까지 여섯 번 살포해 주었다.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시나노골드를 수확하였고, 10월 12일부터 택배발송작업을 했다. ‘수확을 5일 정도 늦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적어 놓았다. 몇 그루 안 되는 후지는 돌풍으로 거의 다 떨어져 판매하지는 못했다. 12월 4일에는 약 180kg의 퇴비를 살포하였다.

이렇게 하여 금년도 유기농 사과 농사는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두 마무리되었다. 예초기와 동력 분무기, 전정가위, 톱 등 농기구를 청소하고 농막과 농장 주변을 정리했다. 이제 내년 2월 중순까지는 나무들과 나는 함께 긴 휴식에 들어간다. 눈이 소복이 쌓인 사과농장을 바라보면서 더 나은 내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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