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가을 들녘을 정리하고 아스팔트 위에 선 농민들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9
  • 기자명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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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농업인구 220만명. 실제 움직일 수 있고 아스팔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구 100만명. 11월 11일 농민 인구 100명 중 1명을 모아 가을의 들녘을 정리하고 아스팔트 위에 섰다. 농민들은 물가를 잡는다고 농민만 힘들게 하는 정부에 맞서 생산비 보장과 농산물값 보장, 생산비 폭등 대책, 기후재난 대책을 요구했다. 거기에 더해 농정의 틀을 전환하자는 농민기본법, 쌀의 공정가격을 보장해달라는 양곡관리법, 생산비 폭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필수농자재지원법 등을 요구했다.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 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의 틀을 전환하여 국가책임 농정을 요구하는 농민·농업·농촌 기본법, 2022년 45년 만의 최대폭 쌀값 하락을 경험한 농민들은 ‘가격투쟁’을 넘어 ‘법제화 투쟁’을 제안하면서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요구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윤석열정권이 1호 거부권 행사를 하면서 농민들의 분노는 더욱 높아졌다. 급기야 농민들은 아스팔트에 서서 윤석열 퇴진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는 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누더기 법안이 되고,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직후 윤석열정권에 대한 규탄 목소리는 이후 퇴진운동으로 이어졌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농민들은 폭등한 생산비에 맞게 ‘쌀 공정가격 26만원 보장’을 요구했고, 쌀 문제의 본질인 40만8,700톤의 수입쌀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농산물 저지 투쟁을 벌여 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발의를 앞두고 있다.

수확기에 접어들며 다시 쌀값은 더욱 하락했다. 윤석열정권이 양곡관리법을 거부하며 농민에게 약속한 ‘쌀값 20만원 보장’은 오히려 시장의 목표가격이 되어 쌀값 상승을 막아섰다. 쌀값이 20만원을 넘어서자마자 발표한 할인지원사업은 쌀값 재하락의 원인이 됐다. 총선을 앞두고 농민들의 표심이 떠날까 화들짝 놀란 윤석열정권이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시작된 하락세를 멈출 수 있는 수준의 유의미한 대책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정권의 ‘20만원’ 약속의 허구성이 낱낱이 드러났다.

지난해부터 물가가 계속해서 치솟으며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3고(高)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농민들에게도 직격탄이 됐다. 비료, 농자재, 면세유 가격이 모두 폭등했고, 금리까지 폭등하며 농민들이 져야 할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에 농민들은 생산비폭등 대응 투쟁을 올해 핵심의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이에 따라 필수농자재 지원조례(중앙은 필수농자재지원법) 제정 운동을 각 지역에서 폭넓게 펼쳐 나가고 있다. 칼갈이 간담회 등 대중 사업을 통해 현재 여러 지역에서 조례가 제정 혹은 발의되고 있다. 필수농자재지원법을 농민기본법, 양곡관리법(개정안)과 묶어 농민 3법으로 명명하고, 연내 발의할 수 있도록 법안을 준비하고 여론을 만들고 있다.

정부의 무대책과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자 했던 농민들은 가을 들녘을 정리하고 아스팔트에 서서 농민 3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쉬움을 뒤로 했지만 이제 동네를 돌며 칼갈이 간담회, 교육을 통해 농민 3법을 해설할 것이며 법 제정을 실현하기 위한 흐름을 만들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에게 권한이 주어진다면 국민 먹거리를 생산하는 고귀한 임무 수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를 법으로 제정할 것이다. 그 울타리 속에서 젊은 농민들을 키워내며 함께 농사짓는 시대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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