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체육’ 표기 금지로 충분할까?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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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발효과정 대신 염산으로 단백질을 분해한 ‘아미노산액’을 간장으로 부른지 오래다. 여기에 미량의 양조간장만 섞으면 제품명에 ‘진간장’을 붙일 수 있고, ‘발효명가’와 같이 혼란을 부를만한 브랜드 표어를 공통으로 덧입히는 데도 전혀 제약이 없다. 혼합간장이라는 대분류 아래 적시하는 성분표에서도 산분해 ‘간장’으로 표기된다.

우리 콩으로 제대로 만든 발효간장도 수입 콩 아미노산 분해액도 잘 모르는 소비자가 보기에는 그저 똑같은 간장이다. 차이는 성분표에 적힌 매우 작은 글씨로나 확인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어떤 이유로 ‘혼합간장’, ‘산분해간장’이라는 명칭이 붙는지 소비자들은 따로 조사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로 인해 피어나는 옅은 관심은 대개 가격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큰 저항을 이길 수 없으며, 소비자는 이윽고 ‘똑같은 간장’으로 치부해버린다.

간장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축산물에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성 원료를 기반으로 축산식품을 표방하는 ‘대체식품’들 얘기다. 지금 우리나라 소비자의 절반 정도는 ‘산분해간장’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간장협회, 2020 소비자 간장인식조사). 간장의 사례를 생각하면 대체식품의 일상화는 그다지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 있으며 실제로 시장은 급속 성장하고 있다.

산분해간장이 생산과정을 가리는 게 문제라면, 대체식품은 축산물 가공식품보다 우월한 것처럼 주장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대체’라는 표현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있음은 물론이고 ‘지구를 위한’, ‘에코’ 등과 같이 축산물 기반 가공식품 대비 ‘우위’에 있는 것처럼 제품을 꾸미는 행위들 역시 규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을 배포한 식약처부터가 대체식품을 ‘식탁의 혁명’,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등의 수식을 사용하는 등 치우친 견해를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내왔다. 대개 수입 식량작물 기반으로 생산되는 이 식품들이 탄소중립 관점에서 국내 축산물 기반 가공식품 대비 어떻게, 얼마나 환경적 우위를 점한다는 건지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대체식품은 가격이 아닌 축산물에 대한 혐오(설령 그것이 잘못된 사실에 기초할지언정)를 토대로 소비를 유도해왔다. 그 무엇을 이유 삼든 제품의 선택은 소비자의 권리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간장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을 간장처럼 판매할 수 있도록 한 특혜로 인해 국산 콩 농사와 전통 장류 가공업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먹거리의 한 축을 책임져 온 축산업의 가치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최소한 중립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한 정의와 표기를 바탕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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