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주일 앞당겨 핀 사과꽃, 불안했던 사과농사가 끝나고

임성무 (사)전국사과생산자협회 홍보기획위원장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8
  • 기자명 임성무 (사)전국사과생산자협회 홍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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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사)전국사과생산자협회 홍보기획위원장
임성무 (사)전국사과생산자협회 홍보기획위원장

나는 경북 문경으로 귀농해 13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선대에 조성한 2,000평의 개심형 과수원과 귀농해서 조성한 밀식 과수원 3,600평을 경영하고 있다.

올해는 사과농사에 있어 그 어느 해보다 이상기후로 인한 어려움이 많았다. 수십년 사과농사를 지으신 분들도 올해 같은 날씨가 지속되면 더 이상 사과농사는 힘들다고들 하신다.

3월 이른 봄, 고온의 날씨가 지속되면서 개화 시기가 일주일 이상 앞당겨졌다. 해마다 개화 시기의 이상저온으로 어느 정도는 냉해를 입어왔다. 그런데 올해처럼 일주일 이상 꽃이 빨리 피면 더 큰 냉해가 우려됐기에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4월에 찾아온 이상저온으로 결국 냉해를 피할 수 없었고 일찍 핀 꽃들은 수정이 되지 않았다. 고품질 사과를 생산하기에는 불안한 출발이었다. 사과 수정에 큰 도움을 주던 벌도 많이 사라지고 추운 날씨에는 활동도 하지 않기에 몇 해 전부터 인공수분을 해왔었다.

새벽 영하의 날씨가 며칠 동안 이어졌고 냉해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제품들도 올해는 별 소용이 없었다. 늦게 핀 꽃들이 수정되면서 사과는 더디게 비대해졌고 껍질에는 동록현상(철에 녹이 슨 것처럼 반점이 생기고 표면이 거칠어지는 현상)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졌다. 많은 꽃이 냉해로 수정이 되지 않으니 사과 착과수도 크게 줄었다. 조사해보니 작년보다 40% 정도는 사과가 덜 달렸다.

6월엔 때아닌 우박이 쏟아졌다. 굵직굵직한 우박 알갱이들은 그나마 힘겹게 달려있던 사과를 무자비하게 때려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8월에 수확하는 사과가 쓰가루 품종이다. 쓰가루의 우박 피해율은 68%. 거의 모든 사과에 상처가 생긴 것이다. 수확한 사과는 지역농협으로 출하했고 대부분 비품으로 선별되었다.

이른 개화와 냉해, 우박도 힘겨웠지만 특히 사과에 피해를 많이 준 것은 그 어느 해보다 긴 장마였다. 강한 폭우와 50여일 간의 장마로 물에 젖어있는 듯한 환경은 사과나무에 치명적이었다. 기존 배수 시설은 쏟아지는 폭우를 감당할 수 없었고, 사과나무엔 역병이 생겨 고사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애지중지 키운 5년차 감홍 사과나무를 30% 정도 베어낼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다시 묘목을 심고 사과를 생산하기까지 수년의 시간을 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감홍은 단가가 높아 소비자 직거래로 판매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탄저병과 부패병으로 수확을 거의 못했다. 내심 작년 생산량의 두배를 목표로 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던 것이다. 주문예약을 했던 고객들께도 양해를 구하고 주문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사과 가격은 급등해 그 어느 해보다 비쌌지만, 팔 수 있는 사과가 얼마 없어 큰 수익을 얻지 못했다.

올해는 병해충 증가세가 심각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병해충의 종류와 발생 시기를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정규방제 외에도 살균제와 살충제 방제 횟수를 늘렸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사과나무 잎은 갈반병으로 조기 낙엽 됐고, 사과는 탄저병과 부패병으로 썩었다. 그나마 나무에 달려 있는 사과도 상품성이 낮아 출하를 해도 농가소득에 큰 도움이 못된다.

과수원 경영비도 건지기 힘든 농가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이다.

앞으로는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더욱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속가능한 사과재배를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필수이며,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 측면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인식을 높이고, 사과농사를 비롯한 과수농가들이 대응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적응력이 높은 우수한 품종의 개발과 보급, 기후변화에 적합한 재배기술의 개발과 교육 등이 필요하다. 또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사과농가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위한 농업재해보상법을 제정해야 한다.

수확철이 되면 한 해 애쓴 수고를 보상받는 기분에 뿌듯한 보람을 느끼지만 좀 더 수량이 많고 품질이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또한 많이 든다. 앞으로 기후든 사과산업 환경이든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매년 조금씩 성장해가자는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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