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⑦ 남산도서관·어린이회관·「어깨동무」

  • 입력 2023.12.03 18:00
  • 수정 2023.12.03 18:0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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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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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의 여러 시설 중에서 일요일이 되면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 있었다. 시립 남산도서관이었다. 일요일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주로 중고등학생들의 시험 기간이 낀 일요일이면 예외 없이 열람석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가서 무슨 특별한 자료를 열람하거나, 책을 대출받아 읽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등학생들의 책가방에는 교과서와 노트, 혹은 <정통(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 따위의 참고서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도서’가 필요해서 도서관에 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앉을 ‘자리’가 필요해서 몰려든 것이었다. 남산 인근에 사는 학생들뿐 아니라 먼 데 사는 학생들도 아침 일찍 몰려가서는, 문을 열 때까지 두세 시간 동안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쯧쯧쯧,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다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저게 무슨 낭비야. 그 시간에 집에서 공부를 할 일이지.

아침 산책 나온 어른들은 기다란 학생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끌끌 혀를 찼다. 하지만 여러 학교에 적을 둔 학생무리에 섞여서 ‘남산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한다’는 것은 은근한 경쟁심 때문에 긴장감도 생기고…공부하는 맛도 기분도 다르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상당수 학생들의 경우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주거상황이 열악해서 학생들이 가정에서 자기 몫의 공부방은 엄두를 낼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순전히 공부에 전념할 공간 때문에 도서관을 찾기도 했다.

열람실 입장을 위해 줄을 서는 방식도 ‘진화’해서, 언제부턴가 주인을 대신해서 책가방들이 줄을 섰다. 그 줄이 매우 길어서 멀리서 보면 거대한 구렁이 형상, 그것이었다. 당시 중고생의 책가방은 규격품으로 찍어낸 듯 그놈이 그놈 같았는데도 열람실 입장이 시작되면, 흩어져 있다가 부리나케 달려온 학생들은 용케도 모두 자기 가방을 척척 찾아들었다.

도서관이 시험공부 하려는 중고등학생들로 북적거렸다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초등학생들로 북적거리는 곳은 따로 있었다. 1970년에 남산야외음악당 앞에 세워진 어린이회관이 그곳이었다. 최상인 식물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규모가 아주 컸어요. 지상 13층 높이에 연건평이 3,700평이나 됐으니까요. 그 안에 어린이들을 위한 체육관, 실내 수영장, 어린이극장, 과학실험실, 도서실, 공작실 등등 다양한 교육 시설을 갖춰 놓았는데, 특히 여름방학이면 지방학교에서 단체로 올라온 아이들로 왁자지껄했지요. 아이들은 시청각실에 들어가서 영화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969년도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잖아요. 미국 정부로부터 달 착륙선의 모형을 기증받아서 천체과학실이라는 데다 전시를 했는데 아이들이 아주 신기해했지요.”

어린이회관의 운영 주체는 ‘육영재단(育英財團)’이었는데, 대통령인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그 재단에서는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도 발간해서 전국의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변변한 읽을거리가 궁했던 당시에 특히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 잡지의 표지에 박힌 흰색 어린이회관 건물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물론 ‘어깨동무’의 발행인도 육영수였다. 1967년에 창간한 ‘어깨동무’는 처음에는 육영수 개인의 사업으로 발행해오다가, 1969년 4월부터는 발행 주체가 육영재단으로 바뀌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어깨동무’는 한때 발행 부수가 매월 15만 부를 넘나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4년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지고 난 다음에는 그의 맏딸 박근혜가 발행인이 되었으나, 뒤이어 나온 어린이 잡지들과의 시장 점유 싸움에 밀려서 차차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적자가 쌓여서 1987년 5월에 종간되었다.어린이회관은 1974년에 남산 시대를 마감하고 광진구 능동의 새 회관으로 이전하였다. 한편 서울시립도서관이었던 남산도서관은 이제는 서울시교육청 산하 도서관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나 예전의 그 자리에 안녕히 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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