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금지 시점 전에 유기농자재 썼건만 인증취소 운운?

농약 성분 ‘카탑’ 포함된 유기농업자재, 10월 20일 판매금지 조치
판매금지 이전에 해당 농자재 사용한 농민, 친환경인증 취소 위기

  • 입력 2023.12.03 18:00
  • 수정 2023.12.03 18:0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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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정부에서 써도 된다고 했던, 정확히는 친환경농민이 사용할 때까지만 해도 판매금지 조치가 취해지지도 않았던 유기농업자재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사용해도 되는 농자재라 여겨 그 농자재를 쓴 농민은 친환경인증 취소위기에 처했다. 설령 취소를 면해도 현 제도상으론 농약성분 검출 농산물은 유기농 인증 농산물로 판매할 수 없기에, 해당 농민은 고스란히 손해를 입을 위기다.

전남 보성군 조성면의 유기농 키위 재배농민 심오남씨는 지난달 8일 ㈜산업공해연구소 측으로부터 본인이 재배한 키위에서 농약 성분 ‘카탑(Cartap)’이 검출됐다고 통보받았다. 카탑은 올해 상반기까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박성우, 농관원)의 잔류농약 분석대상 성분 463종에 속하지 않았으나, 지난 5월 31일부터 농관원 공고에 따라 새로이 포함된 분석대상 성분이다.

심오남씨가 키위 재배 과정에서 사용한 유기농업자재 중 ㈜자연과미래에서 개발한 ‘엔에프 충가라(공시번호 2-5-102, 충가라)’와 ‘멸충대장골드(공시번호 2-5-200)’에 카탑 성분이 포함돼 있었는데, 문제는 이 두 농자재에 대한 농관원의 판매금지 조치가 이뤄진 시점이 올해 10월 20일이었다는 점이다.

심씨의 영농일지 기록에 따르면, 심씨는 농관원이 카탑을 잔류농약 분석대상에 포함시키기 나흘 전인 5월 27일에 자연과미래 측으로부터 구입한 충가라 10병을 수령했으며, 분석대상 포함 바로 전날인 5월 30일에 올해 첫 번째로 충가라 500ml 및 자닮 유황 2L 등의 농자재를 안개분무 형식으로 방제에 사용했다. 심씨는 7월 3일 해당 농자재 중에선 마지막으로 멸충대장골드를 사용했다.

이미 방제를 위해 두 농자재를 사용한 뒤인 7월 15일 충가라로부터, 8월 10일 멸충대장골드로부터 카탑 성분이 검출됐다는 자연과미래 측의 연락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농자재에 대한 농관원의 최종적인 행정처분(판매금지)은 올해 10월 20일에서야 이뤄졌다. 10월 23일, 전라남도는 농관원 행정처분에 따른 ‘유기농업자재 행정처분 조치결과 알림’ 공문을 각 시군에 하달했다.

심씨는 “잔류농약 성분 검출 문제가 발생할 농자재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진작에 구입하지도, 쓰지도 않았을 거다. 문제는 엄연히 농관원에서 ‘써도 된다’고 공시해 놓은 유기농업자재를 구입해서 썼을 뿐인데, 뒤늦게서야 ‘이 농자재는 농약 성분이 포함된 농자재니 쓰면 안 된다’고 통보받으니 당혹스럽다”며 “키위도 1년 작기의 전체 계획을 세워놓고 반드시 사용해야 할 시점에 방제용 농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그 1년 계획에 맞춰 (6~7월에) ‘써도 된다’고 한 유기농업자재를 카탑 성분 검출이 공식화되기도 전에, 10월 판매금지 조치가 취해지기도 전에 썼던 우리는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하다못해 유예기간이라도 둬야 하지 않았나. 농민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건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전남 보성군의 유기농 키위 재배농민 심오남씨 농장 창고에 쌓인 키위. 이 키위들은 친환경인증 취소 위기로 인해 팔 곳을 찾지 못한 채 창고에 쌓였다. 설령 인증취소를 피해도 유기농 인증 농산물로 판매가 불가능해, 원래 가격 대비 30% 깎인 가격으로 공판장에 내야 한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전남 보성군의 유기농 키위 재배농민 심오남씨 농장 창고에 쌓인 키위. 이 키위들은 친환경인증 취소 위기로 인해 팔 곳을 찾지 못한 채 창고에 쌓였다. 설령 인증취소를 피해도 유기농 인증 농산물로 판매가 불가능해, 원래 가격 대비 30% 깎인 가격으로 공판장에 내야 한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참고로 심씨는 약 2,100평 농지에서 유기농 키위를 재배한다. 비(非)친환경인증 키위는 같은 면적에서 약 13~15톤을 생산하는 반면, 유기농 키위는 4톤 가량 생산하는 데 그칠 정도로 생산량의 차이가 크다. 그나마도 올해는 기후 상황 때문에 생산량이 50% 가량 줄어, 약 2톤의 키위를 생산했다.

판매의 경우 현재는 100% 개인 단위 직거래로 판매한다. 원래 물량의 20% 가량은 전남 학교급식에 냈으나, 2020년 코로나19 이후 학교 납품은 중단됐다. 심씨는 “지금도 키위 구매 관련 문의 전화가 계속 오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판매를 연기해야만 하는 처지다(이 이야기를 하던 중에도 심씨에겐 키위 구매 문의 전화가 왔고, 심씨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응답했다)”라며 “유기농업자재 사용으로 인해 내가 치지도 않은 농약 성분이 키위에 혼입돼서 못 판다는 말은 차마 못 한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농약을 어쨌든 사용했으니 농약 성분이 나오는 거 아니냐’고 볼 수밖에 없다. 나로선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내가 10년 이상 친환경 키위 농사를 지어오며 소비자들에게 쌓아온 신뢰가 무너진 셈”이라고 토로했다.

겨우 유기농 인증 취소를 면한다 해도, 농약이 검출된 키위는 유기농 인증 키위로 팔 수 없다. 사실상 공판장에 일반 키위 가격으로 넘기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참고로 심씨가 판매하는 유기농 그린키위 10kg 한 상자는 올해 기준으로 7만원이나, 공판장에서 일반 키위 가격으로 팔 시 30%가 깎여 10kg 한 상자당 4만9,000원에 팔릴 가능성이 높다.

심씨는 농관원 측에 “키위의 잔류농약 성분 재검사를 통해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으면 유기농 인증상태를 유지한 채 키위를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함과 함께, 인증취소 여부를 놓고 청문절차를 신청하려고 한다. 농관원 측은 심씨의 요구에 대해 “내부적으로 상의해보겠다”며 “유예기간 없이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선 무리수가 있긴 하다. 다만 조치를 안 한 건 아니고, 문제의 농자재들에 대한 조치(회수·판매금지)는 취하고 있었다. 10월 20일은 최종적으로 전체 제품에 대해 판매금지를 취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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