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재산권·경작권 모두 침해하는 농지임대수탁사업

  • 입력 2023.12.03 18:00
  • 수정 2023.12.03 18:04
  • 기자명 조경희(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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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전북 김제)
조경희(전북 김제)

농지은행의 사업 중 ‘농지임대수탁사업’이라 해서, 농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직접 농사짓기 어려운 소유주와 농지를 임차하고자 하는 임차농의 계약을 체결해주는 제도가 있다. 임대계약금액의 약 5%를 임대인이 수수료로 부담하지만 직접 경작이 곤란한 농지를 처분하지 않고 계속 소유가 가능할뿐더러 이후에 처분하더라도 양도소득세 부과율을 낮춰주는 혜택도 있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농지를 소유한 임대인이 직접 임차인을 선정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농지은행포털이라는 인터넷 공간에 공고를 올리고 공개입찰을 통해 농어촌공사에서 임차농민을 선정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꿨다. 농어촌공사의 농지지원사업을 알리는 홍보물에는 농지수요(임차인)의 대상자로 청년농업인, 2030세대, 후계농업인, 귀농인, 일반농업인으로 분류하고 경합 시 위에 나열한 순서를 곧 우선순위로 대상자를 선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임차농민의 설움을 넘어 일반농업인의 설움이 시작된다. 사실상 최후순위에 해당하는 일반농업인들이 공개입찰을 통해 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농어촌공사에서 말하는 일반농업인이야말로 현재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온 대부분의 농민들이며 농업과 농민이 홀대받는 가운데에도 농촌을 꿋꿋하게 지켜온 진짜 농민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현 농지 소유자의 부모 때부터 임차해 짧게는 수년, 혹은 수십년을 지어온 농지다. 임대인의 부모가 돌아가시고 자녀가 상속받거나 돌아가시기 전 증여하는 과정에서 부득불하게 농지임대수탁사업에 맡기면, 계속 농사를 짓고자 했던 임차인의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일 수밖에 없으니, 현장 농민들의 불만이 폭주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제 농지임대수탁사업에 해당되는 농지뿐만 아니라 일부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지임대차계약을 농지은행에서 맡아서 체결한다. 대상자인 임차인 선정도 농지은행에서 공개입찰을 통한다. 계속 지어오던 농지의 임대차계약기간을 연장하러 농지은행에 찾아갔다가 내 땅처럼 알뜰히 가꿔 온 농지를 빼앗기고 돌아오는 꼴이니 이 억울함과 분통함이 얼마나 클 것인가?

설사 어떻게 대상자로 선정돼 농지임대차계약이 완료돼도, 이번에는 수수료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 농지의 소유주인 임대인이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수수료를 뒤에서는 임차인에게 부담시키기도 하고, 수수료를 빌미로 농지임대료를 그만큼 더 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농지계약에 있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임차농의 입장에서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수수료 부담을 떠안는 것이다. 일부 농민들은 농어촌공사에서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이런 제도를 시행한다고까지 의심하고 있다.

정부는 농촌지역의 인구감소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농촌인구 유입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각종 혜택을 주면서 청년농업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제도를 가장해 일반농업인의 임차농지를 반강제적으로 빼앗아 청년농업인에게 넘겨주는 것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농지의 소유자인 임대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임차인을 선정한다는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개인은 소유하고 있는 재산에 대한 처분이나 임대 등에 있어 그 대상자를 스스로 선정할 권리가 있음에도 국가기관이 일방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이를 침해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충분하다.

또한 농지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게 된 농민들에게도 경작권이 있다. 농업경영체등록확인서나 농지대장 등으로 수년간 지속된 경작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고, 농지소유자가 기존 농지임차인에게 계속적으로 농지를 임대할 분명한 의사가 있다면 당연히 경작권은 성립하고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국가기관의 제도에 의해 경작권을 상실할 경우 그에 해당하는 합당한 보상 역시 이뤄져야 마땅하다.

30년째 농민으로 살면서 국가기관이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행사하는 수많은 불편부당함을 겪어 왔지만 현재 농지은행의 농지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농지소유자의 재산권과 임차농의 경작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한 것처럼 심각한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공정과 상식에서 어긋난다는 말이다. 한평생을 농촌과 농업을 지키고 살아온 농민들이 어느 날 ‘일반농업인’이 되어 정당한 권리마저 일방적으로 빼앗기게 된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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