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젊고 자넨 더 젊잖은가”

  • 입력 2023.11.26 19:04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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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호는 스승이 내준 제술(製術)을 짓기 위해 경서와 사서를 뒤적였다. 제술은 경서와 사서를 바탕으로 시와 부(賦), 표(表) 등을 짓는 과정이며 식년시나 별시에서도 치르는 시험이었다. 스승은 강회나 백일장을 포함해 초시와 복시까지 겨냥하고 병호를 훈련하는 중이었다. 시제를 찾아 책장을 넘기는데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책만 뒤적여서야 공부가 이루어지는가?”

창옷 입은 사내가 안을 굽어보는 중이었다. 훤칠한 키에 얼굴은 길고 볕에 그슬린 그를 병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일족의 어떤 참서가 벼슬을 사 세도를 부릴 적에 절골 제각에서 재떨이를 던지며 싸웠다는 사람.

“병서라면 몰라도 고리타분하게 경서가 다 무어야? 나가자!”

사내가 말하였고 병호는 제꺽 신을 꿰었다. 담장을 따라 골목을 나서자 행길이 나타나면서 들이 펼쳐졌다. 물이 찰랑거렸고 개구리와 물뱀이 누비고 다녔다.

“내 숙조모님이 네 할머니와 동기간이니 가만 있자…… 우리가 어떻게 되나?”

병호가 얼른 대답하였다.

“사돈간이우.”

이것 봐라, 사내가 그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김필상이다. 숙조모님 댁에 공부하러 왔다더니…… 네가 병호로구나.”

“전병호요.”

초가를 지나자 밭과 논이 시작되고 느티나무 아래에 무덤이 보였다. 느티나무의 호위를 받는 봉분은 여느 무덤보다도 훨씬 컸고 따로 관리하는지 쥐 파먹은 데도 없었다. 방귀 뀌는 집에서야 지관이 손가락질하면 애꿎은 송장을 파고라도 묘를 쓴다지만 논 가운데 무덤이란 아무려나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병호의 생각을 읽었는지 필상이 일러주었다.

“이것은 정여립의 용마 무덤이다.”

“용마라면 말이란 게요?”

“정여립이 타던 말이지.”

관직에서 나온 정여립이 제비산 밑에 살았던 일만은 병호도 들은 적이 있지만 말 무덤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이곳에 처가가 있어 정여립은 제비산 밑에 터를 잡고 전주와 태인 금구 사람들로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었다는 게야. 반상과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지, 아마. 대동이란 무엇인가?”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필상은 말해보라고 다그치는 중이었다.

“『예기』「예운」편에 나오는 말로 문이 있어도 닫지 아니하는 세상이 대동(外戶而不閉 是謂大同)이라 하였습니다.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병든 이도 부양받게 하며, 사치를 미워하여 재물을 축재하지 않고, 천하를 바름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도 미워하지 않되 저를 위해서는 권력을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공을 위해 현명한 사람과 능력 있는 자를 선출하는 일도 포함하는데 곧 대동세상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일세그려.”

“원래 경서가 좀 번드레하지요. 하지만 매사가 물 마시듯 수월하다면 싱겁지 않을까요? 헌데 정여립은 대동을 위해 무엇을 했답니까?”

“매월 보름에 대동계를 중심으로 활쏘기를 겨루고 술과 음식을 즐겼다네. 천여 명의 세를 과시하여 송나라 주린(周麟)에 비유되었다지. 정해년에 왜구가 나타나자 전주부윤의 청을 받아 군사를 출동시켰다더구만.”

“그런 다음에는요?”

“역모를 꾀한다는 상소가 이어져 진안 죽도로 피신하였지. 그러다 관군이 좁혀오자 땅에 꽂은 칼에 목을 찌르며 황소 울음소리를 냈다는 게야.”

“그게 전부요?”

“대강이 그렇다네.”

잠시 후 병호가 한 마디를 질렀다.

“뭔가 하려다 만 사람이구려.”

무덤에 참배하듯 섰던 필상이 흘끗거렸지만 병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종정마을 송진사에게 사숙하는 일로 그가 숙조모 댁에 의탁한 사실을 필상은 알고 있었다. 잔칫집에서 못되게 구는 양반네를 잡도리했다는 말에 궁금하여 만나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고작 털을 가는 처지로 눈빛이 방자하고 언행 역시 놀라운 데가 있었다. 한 때 『정감록』 등을 읽고 승지(勝地)를 찾아다녔다는 기창의 영향을 받았을까. 하기야 말세에 접어들었다고 외치는 무리로 세상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랑민은 출신 때문에 입신하지 못한 한사나 관의 수탈과 부호의 농간으로 터전을 빼앗긴 농민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농토에서 떨어진 유랑민은 산적이 되거나 유리걸식을 하는데 훈장이나 지관 의원 등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한사들이 두통거리였다. 동류와 결탁해 작변(作變)으로 일을 삼고 정씨를 내세워 병창이나 관아를 습격하기 일쑤였다. 아이들까지 목자(木子, 李)가 망하고 전읍(奠邑, 鄭)이 일어난다는 말을 읊조릴 형편이고 보니 고변(告變)과 작변은 멈출 날이 없었던 것이다. 당장만 해도 지리산 남쪽 광양에서는 한사와 무뢰배가 관부(印符)를 탈취한 후 현감을 축출했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주모자들은 광양에 거주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태인 사람까지 포함되었다 하니 이는 분명코 변란(變亂)이었다.

용마 무덤을 벗어난 필상과 병호는 오리알터를 비껴 금산천을 따라갔다. 계곡의 꽃잎을 보며 시인 묵객은 선경이 있다 하겠지만 금산사에 닿게 돼 있었다. 필상은 아름드리나무가 선 안쪽 서낭당으로 병호를 끌었다. 좁다란 문을 들어서자 돌부처가 섰는데 사람들이 미륵할미라 일컫는 분이었다. 너부데데한 얼굴에 눈을 부릅뜬 형상이지만 가사와 손가락은 한없이 부드러워 미륵할미는 무서우면서도 푸근하고 이쪽이면서 저쪽 분위기를 풍겼다. 바라는 바가 많은 여항의 백성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두고 항용 미륵할미에게 향을 바쳤다.

“여기 모악산은 엄뫼나 큰뫼로 불렸다네. 산이란 그저 솟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 이어지는 통로였다는구먼. 그래 크기와 상관없이 모악산을 엄뫼나 큰뫼라 하는데 하늘과 통하는 산으로 보았던 게지. 우리네야 하늘을 섬기는 백성이 아닌가. 하늘님이며 하느님이 다 그것인데 그렇다면 이 하늘은 무엇인가?”

필상은 금산사 전각 사이를 질러 모악산 줄기를 탔다.

“『천자문』에서 말하는 하늘천 따지며 집우 집주가 아닐지요.”

“그럴 테지. 함경도에 가서 여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도 하늘을 섬기고 있었네. 흑하 저쪽 사막의 무리도 같다 들었네. 그를 보면 우리네는 저 흥안령을 넘어온 게란 말이야. 헌데 오랑캐라 핍박받으면서 구태여 황하 남쪽만 바라보겠는가?”

“내 형제라도 그르면 그르고 이웃이라도 옳으면 옳지요.”

“그 또한 맞는 말일세. 다시 모악산으로 가보세. 백제 부흥의 꿈을 무마하려고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중창하고 미륵을 모셨지만 미륵이 이곳에 온 게 우연이겠나? 커다란 패배를 당하고 나라가 문을 닫는 순간 비원은 안으로 숨어들었지. 그래서 이곳은 선도며 미륵이며 서왕모까지 한꺼번에 어우러져 꼼지락거리는 땅이 되었단 말일세. 초목을 키우려고 온갖 것이 옴싹거리게 되었단 말일세. 어찌 정주학(程朱學)이나 공맹만을 우러르겠는가?”

그들은 금산사가 보이는 곳에서 야트막한 무덤에 등을 대고 앉았다. 무덤가에 널린 삘기 속살을 입에 넣자 달착지근한 맛이 우러나왔다.

“집을 떠나 주유한다고 하던데 이번 행선지가 그럼 함경도였습니까?”

“말한 대로일세.”

“그곳은 어떠했습니까?”

“여진 사람과 섞여 이쪽저쪽이 구분되지 않았네. 십 년 동안 한재와 충재가 들어 야인 땅에 들어간 사람이 부지기수라더구만. 조선은 뿌리째 썩어가고 있네. 가만 두어도 무너질 터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야.”

“나도 형님을 따라 훨훨 날아다니고 싶소. 형님을 만나니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처음보다 공손해져서 병호는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난 젊고 자넨 더 젊잖은가. 답을 찾아야지.”

필상은 무덤을 베개 삼아 누웠다. 병호가 따라 눕자 햇빛이 얼굴을 간질여 재채기가 날 것 같았다. 솔향을 맡으며 졸다가 해가 설핏해져 돌아왔을 때 이모할머니 댁에는 기창이 또 와 있었다. 황새마을에 이사를 하게 됐다며 길을 나서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병호는 아버지가 서운해 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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