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⑥ 야경(夜景) 관광버스를 타고 남산에 가면…

  • 입력 2023.11.26 18:00
  • 수정 2023.11.26 18:59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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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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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단위로 공원에 올라 식물원을 관람하고, 연인끼리 케이블카에 올라타 공중을 나는 짜릿한 체험을 하고, 친구와 전망대에 올라 시가지를 조망하고…. 하지만 남산이 늘 그렇게 건전한 휴식처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 서울 시내 야경 관광할 사람 버스에 타세요! 두 사람만 더 타면 떠납니다! 기가 막힌 서울 밤 풍경 구경 갈 사람 얼른 타세요! 에이, 그냥 출발해야겠다. 자, 출발합시다, 오라이!

초저녁, 화신백화점 앞 등의 종로통이나 광화문 부근에서는 서울의 밤 풍경을 구경시켜준다는 관광회사의 버스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곳저곳을 돌다가 밤이 이슥해질 무렵 승객들을 모두 내려놓는 곳이 바로 남산이었다. 보통은 연인끼리 관광버스를 탔지만, 드물게는 낯선 남녀가 버스에서 짝을 이룬 다음, 남산에 내려서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무렵 <선데이서울> 등의 주간지에 간헐적으로 ‘서울 야경관광 백태’ 따위의 제목 아래 매우 선정적인 기사가 실리는 바람에, 순수하게 야경을 즐기기 위해 버스에 올랐던 사람들마저 행인들의 간지러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기에 맞춤한 곳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야간에 남산에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남녀가 알콩달콩 밀어를 나누는 현장에 두세 명의 불량배가 나타난다.

-껌 사세요, 껌이요! 어이, 거기, 껌 사라는 말 안 들려?

-꺼, 껌이오? 껌…있는데요.

-껌이 있으니까 못 사겠다, 이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껌이 어, 얼만데요?

-한 통에 천 원만 내.

-천 원이오? 아니, 30원이면 껌 한 통 사는데….

-짜식이 천 원을 내라면 내지 말이 많아! 너 이리 따라와!

그렇게 해서 주머니를 모두 털리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호되게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다.

최상인 식물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껌 한 통에 잘해야 이삼십 원 할 때 천 원 내라, 이천 원 내라, 그런단 말예요. 그러면 당하는 남자도 데이트 중인 여자한테 체면이 안 서니까 만용을 부려서 뭐라고 대거리를 할 거 아녜요. 그럼 너 잘 걸렸다, 하고 으슥한 데로 끌고 가서는 사정없이 구타를 하고 주머니를 탈탈 터는 거지요. 뒤늦게 신고가 들어와서 현장에 가보면 벌써 사라지고 없어요. 다 조직이 있어 가지고 망보는 사람도 사전에 배치를 하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밤에는 일반 시민들은 남산공원에 오는 것을 꺼려했지요.”

밤이 깊어 11시가 되면 인근 남산파출소에서 ‘자유의 종’이 울렸다. 통금시각이 한 시간밖에 안 남았으니 속히 하산하라는 신호였다.

“예전에 시골 국민학교에서 치던 종보다는 훨씬 크고 소리도 제법 웅장했어요. 좀 재밌게 말하면 그 종소리는 남산공원 오늘 영업 끝났으니 모두들 하산하시오, 그런 신호인 셈이지요. 그 종은 남대문경찰서에서 특별히 주문제작을 해서 남산파출소에 달아놓고 밤마다 울리게 했던 것이지요. 남산에 올라온 사람들 서둘러 내려가라고.”

시민들의 통행을 통제해서 이동의 자유를 속박하겠다는 신호로 울렸던 그 종의 이름을 어째서 ‘자유의 종’이라 불렀는지는 최 원장도 모르겠다고 했다.

드물게는 종이 울렸음에도 제때 하산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방범 순찰대에게 적발되어서 파출소 신세를 져야 했다. 물론 그들은 호송차에 실려 갔다가 즉결재판을 받고서야 풀려났다.

요즘은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면 90분 동안 시내 야경을 두루 관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중에 남산의 서울타워에 올라가서 30분 동안 포토 타임을 가질 수도 있다는데…그 원조가 바로 70년대의 야경 관광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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