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협회 음성군지부의 ‘지역 한우농가 살리기 대작전’

  • 입력 2023.11.26 18:00
  • 수정 2023.11.26 19:1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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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김명길 전국한우협회 음성군지부장이 트랙터에 올라 미소 짓고 있다.
김명길 전국한우협회 음성군지부장이 트랙터에 올라 미소 짓고 있다.

 

10년 만에 찾아온 소값 파동에 한우농가들의 고심이 깊다. 여기에 이미 확정된 수입 소고기의 완전 무관세는 그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고,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규제 역시 층층이 쌓이고 있다. 그 속에서 중소 규모 한우 번식농의 생존가능성은 나날이 낮아지고 있으며 사육을 포기하는 이들의 폐업도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한편에선 자포자기 않고 당장 실행 가능한 전략을 찾아 실천하는 농민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역 한우농민의 경쟁력과 생존을 위해 공동체적 노력을 펼치는 전국한우협회 음성군지부가 바로 그런 존재들 중 하나다.

 

음성군지부 사람들을 만난 곳은 음성축협 내 사무실이 아닌, 군 경계 대소면에 위치한 음성축산물유통단지 인근의 ‘허허벌판’이었다. 이날 김명길 음성군지부장은 음성축협이 내준 5톤 트럭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트랙터를 이곳에 내린 뒤 단지 주변 맹지를 갈아엎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이 땅은 김 지부장을 비롯해 지부 어느 회원의 땅도 아니다. 그럼에도 한우농가들이 나서 남의 맹지를 가꾸고 있는 덴 나름의 바람직한 이유가 있었다. 음성축산물유통단지는 주 판매동 바깥 대부분의 부지가 땅 주인만 둔 채 비어있는데, 아직 단지가 완전한 활성화에 이르지 못해 판매동 만이 부산물 가공·판매 중심으로 정상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래 설계대로라면 육가공공장 등의 계획시설이 들어서야 했을 이 방치된 땅에 음성군지부는 음성축산물유통단지 관리단(대표 최종식)과 함께 청보리 등 경관이 좋은 사료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사료작물을 주로 심는 만큼 물론 한우 농가들의 조사료 수급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음성군지부가 당장의 이익과 무관한 이 일에 큰 힘을 들인 건 무엇보다 군내 한우 부산물 소비 촉진을 통해 농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내년에 어느 정도 경관이 완성되면, 음성축산물유통단지 관리단은 이를 바탕으로 한우 농가들과 함께 가칭 ‘한우부산물축제’도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단지의 재도약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의욕’을 뒷받침하는 후계농들

앞서 트랙터를 직접 몰고 나선 장면은 지역 한우산업을 생각하는 김 지부장의 ‘의욕’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지부 현황 설명 요청을 받은 김윤정 관리실장이 “이렇게 의욕적인 지부장님은 (전국에) 잘 안 계실 것”이라는 농담을 건넬 정도다. 6년 전 지부를 처음 맡은 그는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지부의 영향력을 크게 키우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지부장은 음성군지부가 지역 활동은 물론이고, 소규모 농가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정부 보조사업의 수주·배분에 앞장서는 등 농가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덕인지 지부의 회원 수는 최근 300명 수준까지 늘어났는데, 음성군의 ‘통계상’ 한우 농가가 400가구 정도니 거의 대부분의 사육농가를 지부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봐도 무방하다.

 

음성군지부의 젊은 후계농들은 지부의 각종 활동과 사업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김명길 전국한우협회 음성군지부장을 중심으로 왼쪽은 안건희씨, 오른쪽은 한상민씨(왼쪽).
음성군지부의 젊은 후계농들은 지부의 각종 활동과 사업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김명길 전국한우협회 음성군지부장을 중심으로 왼쪽은 안건희씨, 오른쪽은 한상민씨(왼쪽).

 

의욕과 신념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를 돕는 10여명 남짓한 지부 내 젊은 후계농들의 헌신 또한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당장 이날의 장면에서도 그를 돕기 위해 트랙터가 헤집은 필지에 종자살포기를 매고 들어간 건 동년배 동료 농가가 아닌,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아들뻘 한우 후계농 안건희씨였다. 이렇게 김 지부장이 ‘일을 벌일 때’ 마다 인근에 사는 청년후계농이 뛰쳐나와 그를 돕는 풍경은 일상에 가깝다는 게 또 다른 청년의 설명이다.

음성군지부의 핵심 사업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된 ‘퇴비유통사업’의 실무에도 후계농 한상민씨가 핵심 인력으로 참여하고 있다. 농사짓는 부모님이 일반 농가 퇴비를 받았다가 가스 피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한씨는 “축산 농가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좋은 퇴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부장님께 ‘퇴비부숙도 검사 의무화도 됐으니 고향에서 이런 사업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농기계를 내어주시고 일을 추진하셨다”라며 “항상 책임지는 자세에 저희도 힘을 내 일을 돕게 된다”라고 말했다.

 

“영세농 위해 시작한 퇴비유통조직, ‘전국 최고 모범사례’ 만들어볼 것”

지부가 설립한 영농조합법인을 통해 1년 전부터 본격 영업을 시작한 퇴비유통전문조직은 음성군지부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다. 김 지부장의 스키드로더와 트랙터 등을 사용해 한씨처럼 퇴비교반에 능숙하고 박식한 젊은 인력이 회원 농가의 부숙·교반·검사·포장·유통·살포에 이르는 퇴비 처리 절차 일체를 대행해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소규모 한우 농가만을 대상으로 일하고 있단 점이다.

지난 2021년부터 시작된 축분 퇴비 부숙도검사 의무화는 영세한 한우농가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 우분을 경종농가 누구나 원하는 양질의 퇴비로 만들 수만 있다면야 축분 처리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문제는 퇴비를 뒤섞는 교반 작업이 소규모 농가 입장에서는 만만찮은 일이란 점이다. 대부분 장기 보관을 위한 퇴비사 증축도, 직접 교반을 위한 고가 중장비 마련도 불가능하다보니 결국 작업을 위탁하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100만원 단위의 비용을 수반하는데, 처리 용이한 양질의 퇴비가 나올지 또한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어려움을 마주한 음성군지부는 자체연구와 농업기술센터의 협조를 통해 협소한 퇴비사에 적합한 교반작업 매뉴얼을 마련했다. 중소규모 농가의 생존성 향상을 위해 시작한 사업인 만큼, 단순 ‘부숙도 적합’ 판정 수준의 퇴비가 아닌 경종농가들이 돈이나 볏짚을 주고 살 양질의 퇴비를 생산하는 게 목표다. 회원 농가들이 판매를 전제로 퇴비를 생산할 수 있어야 기존의 방식 대비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성군지부 영농조합법인은 회원 농가에서의 실험을 통해 부숙제 및 2회 교반으로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고온발효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음성군지부 영농조합법인은 회원 농가에서의 실험을 통해 부숙제 및 2회 교반으로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고온발효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실제 사업에 참여한 농가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여성농민 조정자(삼성면 용성리)씨는 “주변 농가들이 새까맣게 발효된 퇴비를 좋아해 이제 처리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덕분에 비용도 이전에 비하면 50% 이상 줄었다”라며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나서주니 너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여력이 있어 영농조합법인의 지도 아래 직접 교반작업을 해 본 이순길(삼성면 천평리)씨도 “이전에는 우분 처리에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거의 ‘완숙’에 가까운 퇴비가 나오니 주민들이 알아서 가져간다. 내 300평 밭에도 쓰고 있는데 농사가 아주 잘 된다”라며 “내년에 나올 퇴비까지 이미 다 예약이 돼 있을 정도로 퇴비 있냐고 물어보는 연락이 많다”라고 말했다.

올해만 해도 70농가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소규모·여성·고령 위주의 더 적극적이고 또 절박한 31농가만을 대상으로 추릴 정도로 사업 목적은 확고하다. 김명길 지부장은 “중소규모·고령 농가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만큼, 전국 최고의 퇴비 유통 조직 모범사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내가 갖고 있던 기계로만 작업하고 있지만, 향후 사업을 전담할 기계를 마련하기 위한 지원사업도 지자체에 요청하고 있다”라며 “일단은 회원을 더 늘리지 않은 채 2~3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모범적 체계를 갖추려고 한다. 언젠가 내가 은퇴하고 지도부가 바뀌더라도 음성 지역 한우 농가의 퇴비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체계를 구축하고 유통조직을 활성화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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