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나락등급에도 성차별이… 있을까?

  • 입력 2023.11.26 18:00
  • 수정 2023.11.26 18:59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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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가을 끝 무렵에는 농민들의 나들이가 잦습니다. 농사철에 밀렸던 각종 행사가 물밀듯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농촌인구가 줄었다고 단체나 모임이 준 것은 아니죠. 활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책임을 맡은 간부들은 맡은 역할을 해내려고 애를 씁니다. 덕분에 문턱이 꽤 높았던 단체들이 문을 활짝 열고서는, 가는 사람은 붙잡고 오는 사람은 대환영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중복으로 활동을 할 수밖에 없고, 단체활동도 품앗이로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역사회가 움직여가니 다행인지 불행인지를 가늠하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일전에도 그런 자리가 있었습니다. 나들이 버스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러니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였습니다. 농민들이 모이면 끝없이 농사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이에 대한 생각도 좀 덧붙이자면, 이렇습니다. 처음에 농민들이 모이기만 하면 농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의아했습니다. 여름에는 고추 몇 근을 땄는지, 얼마에 팔았는지 주야장천 이야기하고, 겨울이면 시금치 얘기를 끝없이 합니다. 마늘 수확 철에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게 농사 이야기만 하는 농민들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세상에 무수한 일들이 있고, 무수한 견해가 있을 법도 한데 어찌하여 내내 농사 얘기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혹 다른 얘기는 일부러 피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농민으로 죽 살아보니 농사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배우들이 드라마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자들이 사건에 관심이 많듯 농민도 자신의 일을 정말 좋아하고 농사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일은, 그 어떤 소비적인 일보다 근본적으로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인가 봅니다. 매번 배우게 됩니다.

그날의 주제는 나락 농사였습니다. 딱 벼 수확 철을 넘겼으니 당연히 나락값 이야기가 주를 이룬 것이지요. 그러다가 ‘전국쌀생산자협회’에서 제출한 생산비 이야기를 했고, 200평에 11가마가 평균 수확량으로 잡힌 것을 보고는 우리 지역에 그런 논은 많지 않다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습니다. 그 보고서의 나락 농사뿐 아니라, 따져 보면 다른 농사도 남는 게 없다고들 말을 했습니다. 그나마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사니까 이리라도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젊은 사람이 누가 농사짓겠냐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00씨가 말을 보탭니다. 그것도 문제지만, 성차별도 문제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곡처리장에 산물벼를 팔러 갔는데, 남녀에 따라 차등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다들 입을 모았는데, 특등을 받은 남성의 말을 전해 듣고는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 나락도 특등을 다 주네?”라고. 그 남성은 특등을 받는 나락에 대해 겸손함을 빙자한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등을 받은 00씨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고 했습니다. 등급 당 2,000원씩 차이라도 900평 나락으로 치면 제법 큰 액수이니 왜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여성이라고 무시당한 느낌에 더한 곤혹감을 느꼈겠지요.

나락 등급을 매기는 데에 남녀차이가 어디 있고, 사심이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겠냐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친소관계나 상대의 지위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검수하는 사람도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겠지요.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공정해진 세상인 것은 맞는데, 사람의 관계나 인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던가요? 비슷한 수준의 나락이 특등과 2등으로 나눠지는 데에도 친분과 사회적 지위가 작동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는 사회활동이 드문 여성들의 나락은 특등 쪽보다 하급에 가까울 것입니다. 혹시 이것이 자격지심이고 피해의식이라고 한다면, 그것조차도 역사성이 있는 것이니 그 오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더욱 필요하겠지요. 농촌사회에서 여성이라고 우대해 주는 경우는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려우니까요.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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