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가족농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기

  • 입력 2023.11.26 18:00
  • 수정 2023.11.26 18:59
  • 기자명 원혜덕(경기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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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덕(경기 포천)
원혜덕(경기 포천)

작년 10월에 대산농촌재단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독일의 농업과 농촌 관련 전문가 3명을 초청해 연 심포지엄인데, 강사 중 한 사람인 요세프 히머는 유럽연합(EU)의 농업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일 알고이라는 지역의 농업국 국장이기도 했던 그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첫머리에 “나는 공무원이지만 농민 편에서 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농업 관료라면 당연히 해야 할 말이고 마음가짐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EU의 새로운 농업정책은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할 것입니다”라는 말도 했다. EU의 농업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바람직하게 제시한 것을 보고도 부러웠다.

나는 마지막 순서인 질의응답 시간에 그에게 물었다. “EU에서는 가족농의 범위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내가 전에 스위스 농촌에 머물 때 많은 농가가 대체로 한두 명의 계절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런 경우도 가족농이라고 할 수 있나요?” 내가 직접 경험한 스위스를 예로 들었지만 유럽의 많은 소농들이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답을 들어볼 것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우리 농장 역시 가족농으로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철에는 외부인 한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확실한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대답했다. “농업 노동의 주체가 가족이고 농장 경영을 가족이 이끌고 있다면 그건 가족농입니다. 기업농, 대농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가족농입니다.”

그가 강연 도중에 EU가 소규모 가족농과 젊은 농부들에게는 추가 보조금을 준다는 말을 해서 한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농민에게 주는 지원금이란 게 거의 형식적이고, 있는 것도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과는 거리가 있는 엉뚱한 곳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지원금은 농민들이 농가를 꾸려나가는데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거기에 대해 가족농에게 추가로 보조금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뜻이다.

유엔은 2014년을 ‘세계 가족농의 해’로 정했다. 2007~2008년에 가뭄과 원유가격 상승으로 일어난 식량가격 폭등으로 소규모 가족농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과다. 소규모 가족농이 먹거리 보장, 환경과 생태의 보호, 그리고 농촌 지역을 지속시키는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이어서 2019~2028년을 ‘가족농 10년’으로 추가 지정해 소규모 가족농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이어갔다. FAO는 “지구에 있는 농장들 가운데 90% 이상이 개인이나 가족의 노동에 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체 경지의 70~80%를 경작하면서 먹거리의 80%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가족농이 세계를 먹여 살리고, 지구를 보살핀다고 했다.

가족농에 대한 정의는 수십 개에 달한다고 하나 그 중심 의미는 가족 노동력에 의존하는 농업방식이라는 데에 있다. 가족농은 농장을 꾸려 가는 노동력의 대부분이 가족에 의해 공급되는 형태를 말한다. 귀농이 아닌 귀촌인이 경관을 가꾸며 자급할 농사를 일부 짓는 것도 가족농의 범주에 넣을 수 있고 그 역할 또한 의미가 있지만, 가족농은 주로 농업에서 얻은 소득으로 가계비의 대부분을 꾸려 나가는 경우를 말한다.

저물어 가는 2023년 올해는 ‘가족농 10년’의 한가운데에 있다. 우리나라도 전체 농가의 80%가 소규모 가족농이다. 이 가족농들이 식량을 만들어내고 환경과 생태를 지키고 농촌을 지킨다. 가족농 10년의 선언이 갖는 무게의 얼마만큼이나 우리 사회와 나라가 가족농을 지지하고 응원하는가에 대해서 회의감이 있다. 가족농의 역할과 기능을 사회가 먼저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러한 공감대 위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족농을 지원하고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 농민의 앞날과 함께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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