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82] 농사는 무슨

  • 입력 2023.11.26 18:00
  • 수정 2023.11.26 19: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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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얼마 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곳 영동지역에서 좀 먼 곳이었지만 고속버스를 두 번 바꿔 타면서 너댓 시간이나 걸려 참석했다. 모처럼 세미나 발제가 있기도 했지만, 자주 뵐 수 없었던 많은 전국의 농민들과 지인들을 오랜만에 만나 볼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1박 2일 동안 정말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한 가지,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정년 퇴임하고 1년 전 귀촌·귀농한 A씨, 그리고 평생 농업경제학을 전공하고 은퇴한 후 서울에 거주하는 학자 출신의 농업계 원로 B씨와 휴식시간에 나눈 담소였다.

A씨는 현재 주소까지 농촌지역으로 다 옮겼고, 요즈음은 농민들 농장 일을 도와주며 농사를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부인도 농촌생활에 매우 만족해 즐겁게 귀촌·귀농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A씨의 결단을 높이 산다고 격려하며, 처음부터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고 적응하기 위해 서두르지 말라는 등 귀촌·귀농 8년차 선배로서 조언도 했다.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과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농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듣고 있던 B씨가 정색을 하며 ‘은퇴를 했는데 귀촌은 뭐하러 하느냐’, ‘농사는 무슨 농사냐’라는 취지로 한 10여분 간 나무라듯 반복하며 말했다. 힘든 농사일을 하겠다는 A씨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어서 들어보면 뭘 말하는지 느낌으로 전달된다. B씨의 취지는 분명 ‘그깟 농사일을 은퇴한 사람이 왜 하느냐’라는 것이었는데, 그의 뇌리에는 분명 농사를 얕보고 경멸하는 자아가 내재돼 있었다.

평생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연구한 사람이 내심 그런 사고를 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몹시 의아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나도 정색하며 한마디 하고 말았다.

나는 은퇴한 후 모든 사람이 귀촌이나 귀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든지 은퇴 후 귀촌이나 귀농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귀한 결정이라고 격려해 주고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런 사람에게 뭐하러 귀촌·귀농하려 하느냐고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에 그날 밤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귀농한 지 8년이나 지난 농민과 귀촌·귀농한 1년차인 은퇴자 앞에서 은퇴 후 농촌지역에 내려가거나 농사를 짓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경멸의 말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원로 농업경제학자 B씨를 납득할 수 없었다. 또 화도 났다. 은퇴 후 지역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사는 나는 정말 한심한 사람일까, B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계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수고하며 애쓴다는 격려보다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나는 농업·농촌·농민의 고귀하고도 본질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길 것이란 점이다. 또 은퇴 후 농사지으며 농부로 산다는 것이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귀한 일이라는 자긍심에도 변함이 없다. 그것이 평생 학자로 살아온 내가 쓰러져 가는 우리의 농업과 농촌과 농민에 대한 송구함을 내 스스로 조금이나마 갚는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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