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고 정철균 농민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 입력 2023.11.26 18:00
  • 수정 2023.11.26 19:00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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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1월이 너무 따뜻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할 만큼 기온이 높았는데, 며칠 전 비가 내린 이후 날씨는 금새 겨울로 탈바꿈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 날씨는 오늘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하는 정도로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기후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확인해야 하는 대상이며, 작물의 상태를 보살피는데 중요한 필수 요인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내년에 병해충이 늘어나 농사에도 큰 어려움이 생긴다는데,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농민의 말 못 할 고충이 오죽할까 걱정이 앞선다. 혹시 내년에도 올해처럼 농업재해가 급증하는 것은 아닐지, 어떻게 해야 피해를 예방하고 줄일 수 있을지 정책을 살피고 또 살펴본다.

지난 11일 농민대회가 열린 날은 너무나 추웠다. 쌀쌀한 날씨와는 달리 전국 각지에서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서울로 상경한 농민들의 마음은 뜨겁게 들끓었고, 목소리는 힘이 넘쳤으며 주장은 명료했다. 농민과 농업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현안이 생기고 현실 속 농민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농업정책에 관해 농민과 함께 고민하고 농민의 관점에서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던 시간들이 사실은 단편적인 부분만을 건드리고 있던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질 때도 많다. 연구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먼저 농민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농업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싶다. 9월의 마지막 날 우리 곁을 떠난 진주시농민회 고 정철균 농민의 부고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농민이 처해있는 위기가 더 어마어마한 크기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풍요로운 한가위에도 농민은 풍요롭지 못했다. 모두가 쉬는 연휴에도 그는 쉬지 못하고 병에 시달리는 단감을 보살피러 나섰다. 앞으로도 농민의 삶이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위기와 함께여야 한다면 한국농업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말할 수 없다.

우려하고 염려했던 것처럼 기후위기는 기후취약계층인 농민의 삶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기후위기가 이제는 농민의 생명마저 앗아가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현실에서 농업정책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작물의 생장과 품질에 영향을 미쳐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은 기본이고, 수확량도 예전만 못하다. 잦은 비는 병해충 발생률을 높여 탄저병, 잿빛곰팡이병, 점무늬병, 깨씨무늬병 등 각종 병해충을 창궐시키며 작물 피해를 증가시켰다.

물론 과거에도 다양한 병해충이 있었고, 농민은 병해충 방제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그 양상이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해지면서 농사로는 그 어떤 박사보다도 전문가인 농민이 대응하기에도 어려울 정도의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저 지나가 버리는 현상이 아니라 농민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놓는 기후위기이며 재난 상황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농민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정책을 수립했다. 농민은 빚을 갚지 못해 대출연체율이 종전의 2배나 급증했고, 가장 기본생산수단인 농지를 담보로 한 대출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농지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농민의 위기를 그저 농민 개개인의 위기로만 치부하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삶보다는 더 빚을 내는 삶으로 농민을 부추긴다.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서 농사지어야 하는 농업의 현실, 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농민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농업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의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농민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염려하면서 농민의 현실은 외면하고 농민의 목소리는 후순위로 치부해버리며 섣부른 대책만을 제시하는 농정이 아닌 농민이 주체로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며칠 전 고 정철균 농민의 49재가 있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보살폈던 단감은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손으로 무사히 수확을 마쳤다. 더이상 그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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