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전쟁과 건강, 아니 생명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허영태(포항 오천읍 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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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10여 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건강을 생각해 배드민턴을 시작했습니다. 동호회 활동의 백미는 운동 그 자체에도 있지만 이어지는 뒤풀이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배드민턴에 조금 익숙해지자 아니나 다를까 운동 후 맥주를 곁들이는 시간도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광주 출신 동년배가 이런저런 이야기 중 “기관총 소리에 잠 못 들어봤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경상도 출신인 저로서는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기에 ‘이 양반이 우리 나이에 자다가 무슨 기관총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이면 우리 연배들이 9살 즈음일 때입니다. 충격적인 일은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나이가 맞습니다. 그에게 한밤중의 기관총 소리는 평생 트라우마였던 것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1980년 우리나라 광주보다 더한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건강을 따지기도 전에 생명이 무참히 짓이겨지고 있습니다. 전쟁 시기에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동안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살아있는 동안 건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쟁 지역에서 다섯 명 중 한 명이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양극성 장애 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로, 바다에서는 함포로, 육지에서는 탱크로 수만 발의 포탄을 쏟아붓고 있다는데 제정신인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가자지구가 어린이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또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도 “10분마다 한 명의 아이가 죽고 두 명이 다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어린이들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손자, 손녀이며 가족들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슬픔보다 재앙입니다. 제정신일 수가 없습니다.

전쟁 발발 한 달이 지난 10일 기준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만1,000여 명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쪽 사망자도 10월 7일 하마스의 습격으로 1,400여 명이 사망하고 가자지구 지상전 과정에 군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사망자 수의 몇 배에 달하는 부상자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가자지구에선 보건체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는 전 지역을 장벽으로 둘러쌓아 놓고 이스라엘에서 물자반입을 막고 있습니다. 마취 없이 수술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누구누구의 잘못이 더 크고 그들이 왜 싸우는지 알아보기 전에 전쟁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강대국들은 전쟁물자 제공을 금지하고 의약품, 구호물품을 보내야 합니다. 서로서로 많이 죽였지 않습니까. 학살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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