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⑤ 분수대와 이승만 동상 그리고 백범광장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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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남산의 ‘서울타워’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일절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통제했는데, 전망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도 마찬가지였다. 팔각정 부근에서도, 주요 건물이나 특히 청와대가 내려다보인다 해서, 시내 쪽을 향해서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하게 막아섰다.

-여기는 통제구역이니까 저 아래 분수대 쪽에 내려가서 실컷 찍으세요!

경비원이 카메라를 가리면서 ‘사진 찍으려면 분수대 쪽으로 가보라’며 돌려세우는데, 그렇지 않아도 식물원 앞 분수대는 관광객들에게 사진 촬영지로 이미 각광을 받고 있었다.

“분수대 앞 광장에 가면요, 공원관리소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진사들이 샘플 사진들을 목에 걸고서, 구경나온 시민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선전을 하고 돌아다녔어요. 많을 때는 그 인원이 100여 명이나 됐거든요. 촬영을 하고 나서 사진값을 지불한 뒤에 주소를 적어주고 돌아가면 우편으로 부쳐주는 것이지요. 남산공원뿐 아니라 부산의 용두산공원 등 여타 관광지에서도 사진사들이 다 그런 방법으로 영업을 했어요.”

최상인 식물원장의 얘기다.

-학생들, 분수대 배경으로 기념촬영 한 번 해요.

-좋아요. 그럼 아저씨, 저기 저 꽃시계도 나오게 찍어주세요.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그저 배경이 근사해 보여서 제가끔 멋진 포즈를 취하고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 분수대 자리는 간단치 않은 내력을 지닌 곳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이 자리에 신궁(神宮)이라는 것을 세워놓고 조선인들에게 1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했지요. 해방 후에 철거됐는데 분수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남산도서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광장이 모두 신궁이 차지했던 자리에다 조성한 것이니까 신궁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지요. 이 분수대는 현대 정치사하고도 관련이 깊어요.”

식물원 앞의 분수대 자리는 원래는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동상이 서 있던 곳이었다.

1955년에 이승만의 80회 생일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 제80회 탄신경축 중앙위원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주관하여 이듬해 8월 15일에 동상을 준공하였다. 이날은 제3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8월 17일치 경향신문은 ‘이 동상은 10여 개월에 걸쳐 연 7만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완공되었으며, 총공사비 2억600만 환이 소요되었다. 높이가 81척에 이르고…’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승만 동상은 본체가 7m, 기단부를 합치면 25m에 달하는 초대형 동상이었는데 아부하기 좋아했던 주변 관계자들은 세계 최대의 동상이라고 선전을 하고 다녔다.

그랬는데 1960년 4월 19일,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남산으로 몰려갔다.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 끌어내립시다!

이승만의 동상은 성난 군중에 의해 끌어 내려졌고, 바로 그 자리에 분수대가 조성된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1969년에는 백범 김구 서거 20주기를 맞이하여 ‘김구 선생 동상 건립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김구의 출생일인 그해 8월 23일에 제막식이 열렸다. 이때부터 그 앞 광장을 ‘백범광장’으로 명명하였다. 이렇듯 남산은 두 정치 지도자의 영욕이 교차했던, 우리 현대 정치사의 상징적인 현장이기도 했다.나이가 어지간한 사람이면 KBS 방송국이 남산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더불어서 지금의 서울예술대학 자리에는, 한국 현대연극의 산실이라 할 공연장 ‘드라마센터’가 있었다. 시민들은 인기 배우나 가수의 얼굴을 구경하려고 끊일 새 없이 모여들었다. 드라마센터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남산에 갔다가 재수가 좋은 날이면, 인기가수나 코미디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남산 야외 음악당에서 거의 주말마다 ‘시민 위문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공연을 관람하고 온 사람들은 최희준이 ‘하숙생’을 부르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고,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부르는 배호의 모습도 보았노라고 입이 아프게 자랑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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