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시장 운영자들의 크나큰 고민, ‘공간’과 ‘가공’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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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부시장 관계자들은 안정적 시장 운영의 걸림돌로 ‘공간’과 ‘가공’을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마르쉐@혜화’를 찾은 시민들이 농부와 대화를 나누며 장을 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부시장 관계자들은 안정적 시장 운영의 걸림돌로 ‘공간’과 ‘가공’을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마르쉐@혜화’를 찾은 시민들이 농부와 대화를 나누며 장을 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부시장이란 농민이 재배·수확 또는 가공한 지역 농산물을 시민에게 직접 판매하는, 정례적이고 의도적으로 조직된 시장이다. 기존 시장경제 체제하의 유통구조(예컨대 가락시장, 대형마트 등)에서 농민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농민과 소비자가 소통하기도 어려웠다는 문제 인식 아래, 점차 농부시장을 꾸리는 농민과 시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농부시장을 운영하며 갖는 고민은 무엇일까.

지난 15일, ‘농부시장포럼준비모임’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2023 농부시장 포럼’을 열었다. 대다수 농부시장 운영자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한 애로는 ‘공간’과 ‘가공’ 문제였다. 농부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공간을 찾기 힘들고, 농민의 소규모 가공식품 판매가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다.

안정적으로 운영된다고 평가받는 농부시장 마르쉐도 공간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마르쉐는 그동안 서울 각지를 돌며 농부시장을 열었으나, 공공·민간공간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애로사항에 마주쳤다.

마로니에공원에선 ‘공원에서 조리 또는 가공품 판매 행위가 안 된다’는 규제를 마주했고, 양재시민의숲에선 서초구로부터 운영 허가를 받았음에도 도시공원법상 안 된다며 관리자들이 나무들 사이에 친 ‘금지선’을 맞닥뜨려야 했다. 성수동 등지에선 젠트리피케이션(오래된 동네가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자금이 유입됨에 따라,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에 따른 대관료 폭등으로 시장 운영이 어려워졌다. 어느 상업공간에선 농부시장 운영을 위한 하루 대관료로 600만원 가량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르쉐 활동가 문소라씨는 “코로나19 당시 마트나 백화점, 일반시장은 열린 반면 농부시장은 ‘집합금지’ 명령을 당했다. 그때 ‘농부시장은 시장이 아닌가?’라는 고민이 들더라”라며 농부시장에 필요한 것으로서 ‘공간의 안정적 사용’을 꼽았다. 문소라씨는 “시민의 힘이 작동하는 공유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공공·민간 차원을 막론하고 유연한 협업이 필요하다. 예컨대 카페나 슈퍼마켓이 주중에 운영하고 주말에 쉰다 하면 그 공간을 주말에 농부시장 공간으로 활용할 방법도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지난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열린 ‘2023 농부시장 포럼’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열린 ‘2023 농부시장 포럼’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9년 이래 제주도에서 매월 2회(2·4주차 토요일) 열리는 농부시장인 ‘올바른농부장’의 활동가 문희선씨는 농부시장에서 현행「식품위생법」상 농민이 소규모로 가공한 먹거리의 판매가 어려운 문제를 언급했다.

문희선씨는 “식품위생법 때문에 2년간 계속 제주시청에 전화해 (소규모 농산물 가공품을 판매할) 방법을 물어봤다. 시에선 귤로 칩을 만드는 것도, 잼 만드는 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며 “그러면 (농민이 팔려 했으나 못 팔아) 남은 귤을 판매할 방법이 없냐고 질문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보고 ‘제조업자가 돼라’거나 ‘OEM(생산 위탁)을 제조업체에 맡겨라’는 거였다. OEM을 맡긴다고 하면 우리는 유통업자가 돼서 제조업체에 수수료를 때줘야 하는데, 그로 인해 농민은 원물 가격을 제대로 못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행 제도상으론 요리사가 농부시장에서 우리 농산물을 활용한 조리법을 소비자에게 보여줄 방법도 없다는 게 문희선씨의 설명이다. ‘음식점’이 아닌 한 야외 조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희선씨는 “농부시장에선 생산자와 소비자, 요리연구가가 힘을 합쳐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다양한 먹거리를 소개하고 팔 기회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행「지역농산물 이용촉진 등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제15조엔 지자체장이 해당 지역의 공공기관 또는 민간단체 등이 지역농산물 판매촉진을 위한 일일 직거래 장터를 열 시 ‘이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나, 그 이상의 구체적 내용은 없다.

한편「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제14조엔 지자체장이 ‘임시시장’ 개설을 위해 필요하면 국·공유지 사용을 정부와 광역지자체장에게 요청하거나, 소관 공유재산, 공공장소 및 교통에 지장을 주지 않는 장소 등을 일시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등 임시시장 개설·관리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상의 법 조항이 농부시장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조항임을 언급하며, 농부시장 운영의 근거가 될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역농산물 가공과 관련해, 김정섭 선임연구위원은 지자체 차원에서 농민이 이용할 수 있는 거점농민가공센터를 설립한 전북 완주군의 사례를 들었다. 이 가공센터에서 농산물을 가공하고 싶은 농민은 안전관리 교육을 받은 뒤, 가공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됨으로써 24시간 중 아무 때나 와서 가공작업을 할 수 있다. 이 시설은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 시설이기에 법적인 문제도 없다. 이처럼 혼자 이용하기 어려운 농산물가공시설을 농민이 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지자체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게 김 선임연구위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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