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그녀들의 김장 연대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신수미(강원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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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미(강원 원주)
신수미(강원 원주)

바야흐로 김장의 계절이다. 일주일 내내 김장하는 집에 불려 다니다가 몸살 날 것 같다는 후배가 얘기한다. ‘언니, 김장하는데 나이에 따라 급이 있는 것 알아?’라며 본인이 보고 겪은 일을 얘기해 준다.

60~70대 어머님들은 아직까지는 정정하게 김장을 해낼 수 있어서 본인들끼리 품앗이를 해서 김장을 한다고 한다. 오히려 도와드린다고 하면, 그만큼 대접을 해야 하니 완곡히 거절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연세 이상의 할머니들은 거동도 불편하시고 같이 일을 해도 한사람 몫을 해내기가 어려우니 그 품앗이에 낄 수가 없다.

그래도 도시에 있는 자식들에게 김치를 보내고 싶으니 생각해 내신 것이 그나마 동네에서 젊은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배추 맛 좀 보러 와~’, ‘김장 양념 맛 좀 보러 와~’라고 연락해서 가보면 어르신이 혼자 뭐라도 하시겠다고 종종거리고 계시고, 결국 이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은 김장을 도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김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으려고 열어보면 냉장고 속은 유통기한 지난 음식 등등으로 심란하고, 그러면 또 냉장고 정리까지 하고 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주일에 몇 집을 돌다보면 우리 집 김장을 하기도 전에 허리가 아프다.

그렇게 불려 다닌 몇 명이 모여서 아예 팀을 하나 꾸려서 마을을 돌아도 좋겠다고 얘기가 시작된다. “김장철 단기 알바, 어때? 요즘은 아예 도시에서 자식들이 김장에 필요한 재료를 어머님한테 택배로 보내니까 우리 팀은 가서 양념 치대기를 하고 통에 고이 넣어드리는 작업만 하면 되잖아! 그리고 자식들이 보낸 김장비용에서 알바비를 받으면, 시키는 사람도 덜 미안할 것 아닌가. 가서 일 도와드릴 때마다 미안하신지 옆에서 서 계시더라고. 그리고 우리는 외면할 수 없는 할매들 도와드리고 알바도 하는 것이지. 좋네~.”

김치 맛은 집집마다 다르고, 사 먹는 김치와 집에서 보내준 김치는 받아들이는 느낌부터 다르다. 김장은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여전히 유지되는 겨울을 대비하는 우리 고유의 문화다. 특히 농촌에서는 김장에 필요한 양념채소를 다양하게 집 주변에 키우고, 먹을 배추만큼은 자기 손으로 키우려고 하는 분들이 많다. 동네 어머님들은 양념이랑 다른 재료는 자식들이 택배로 보내는 것들을 쓰시기도 하지만, 배추는 얻어 쓰더라도 꼭 동네 배추를 쓰시려고 한다. 그리고 김장이라는 우리 고유의 문화는 이렇게 여성들의 연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거동도 어려운 어머님이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얼굴도 안 비치고 통이랑 돈만 보내도, 정작 본인은 얼마 드시지도 않는 김치를 몇십 통 담그시고, 그런 사정을 뻔히 아는 젊은이들은 불려가 하던 일인 듯 김장을 거들고 나면 김장의 계절이 지나가는 것이다.

농촌에 있는 늙은 엄마한테 김장을 맡기는 자식들에 대해 우리끼리 성의 없다 말하지만 정작 나도 강원도로 오고 난 뒤 김장할 때 집에 간 적이 없다. 몇 해 전부터는 엄마 혼자 김장을 하고 있는데, 나는 김치통도 양념재료를 보내지고 않고 따박따박 받아먹기만 한다. 엄마는 오히려 자신이 언제까지 반찬이며 김치를 해서 보내줄 수 있겠냐며 해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라고 하시며 김장김치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반찬을 한번씩 해서 보내신다. 김장을 매년 하지는 않았지만 김장을 생각하면 제사 음식 준비할 때처럼 허리가 뻐근하고 무릎이 아프다. 그리고 찬 것을 계속 다루니 손이 계속 시리던 기억까지, 왠지 김장은 춥고, 힘들고, 여성들이 고생하는 날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엄마 혼자 김장했다면서 김치를 보내겠다고 하면 혼자 고생했을 생각에 마음이 짠하고 괜히 미안해지는, 김장은 그런 일이었다.

왜 여성들만 매년 이 고생인가 싶다가도 김장으로 손이 오가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보고 겪다보면 또 그렇게 하던 일이 되는 것 같다. 올해 나는 함께 하는 대학생 청년들과 ‘체험’으로 김장을 한다. 새롭게 농촌에 대해 배우고 경험하는 청년들에게는 김장이 함께 하는 농촌의 즐거운 문화로 기억에 남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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