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촌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김성보(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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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보(전남 나주)
김성보(전남 나주)

나주혁신도시에서 24시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7평 남짓한 빽빽한 매장은 한 사람만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좁디좁은 공간이다.

“야, 엊그제 언니들이랑 다 서울농민대회에 올라왔는디 한번 올라오제 그랬냐” 하니까 “오빠~ 하루도 쉬도 못해요”라며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즘 애들은 정말 상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어느 날은 새벽에 알바 직원이 근무할 때 젊은 청년 몇이 들어와 술이랑 사갔는데 며칠 뒤에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미성년자 학생들한테 술을 팔았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그럴 리 없는데요~.” “신고자가 사진이랑 증거가 있는데요~.”

결국, 후배는 벌금을 물었다. 그래도 가게가 영업정지를 당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란다. ‘선배, 요즘 진짜 힘들어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직접 근무를 해도 야간에 새벽 알바생 인건비 주고나면 남지도 않아요. 나도 최저시급 주는 데는 동의하는데….’ ‘주변에 장사 하시는 분들 모두가 가맹점비, 가게세, 인건비, 전기세까지 안 오르는 게 없어 죽을 맛이야, 5년 가맹계약 끝나면 그만둘까 생각도 많이 해.’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에는 왕년의 성깔 있는 말빨이 튀어나온다.

“도대체,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자가 뭘 원하는지 알기나 하는 것이여 아~씨~”, “알바는 4대 보험 들어도 나는 사업자라고 보험도 못 들어. 세금도 벌금도 다 내는데 정부가 자영업자 대책 발표해도 우리한테는 뭔 개소리로 밖에 안 들려”, “줄만 세우고 입도 뻥끗 못하게 하는 나주정치도 싹~뒤집어졌으면 좋겠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니까.”

그러면서 마지막 한 마디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아침에 늦잠 한번 자고 싶다. 내 삶이 이렇게 피폐해질 지는 정말 몰랐네. 마트 일을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 후배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숨이 막히고 살고 싶다는 절규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힘이 될까? 돌아오는 차창너머 영산강을 바라보면서 그처럼 굽이굽이 굴절 많았던 그녀의 삶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가 나주에 와서 농민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그녀는 패기 넘치고 웃음기 많은 여성농민이었다. 그녀의 어떤 운명이 농촌을 떠나게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여전히 농민동지들을 그리워하고 힘없는 진보정치를 안쓰럽게 껴안아주며 골목상권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깨어있는 시민임에 틀림없다.

며칠 전 11월 11일 농업말살 윤석열퇴진 농민대회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서울투쟁에 참여했던 농민회원 두 분이 계셨다. 한 분은 소방관 퇴직하고 농업에 전념하고 있다. 농업노동과 소득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과수원 절반을 노지로 바꾸면서까지 과감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는 완전한 농민이다. 그런데, 서대문에서 서울역으로 용산 권력을 향해 아스팔트 대로를 수만명의 군중과 함께 걸어가는 희열에 들떠 아픈 다리의 고통마저 느껴지지 않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민중의 거대한 물결 속에 함께하며 처음 느끼는 희열과 용기는 결국 탄핵과 퇴진의 횃불로 타오를 것이 분명해보였다.

우리 마을에 귀농을 온 청년농민도 함께 농민대회에 처음 참석했다. 상경하는 버스에서 왜 귀농을 하게 되었는지, 농사를 준비하면서 겪는 심정적 애로사항도 충분히 알게 됐다. 사실, 요즘에 귀농하겠다고 하면 가족부터 말리는 현실인데, 도시에서의 삶을 과감하게 ‘손절’한 채 우리 마을에 집을 짓고 영구정착중인 후배를 보면서 멘토 없이 시작했던 나 같이 우여곡절을 걷지 않도록 더욱 마음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농촌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도시보다 농촌의 좋은 점은 차고 넘친다. 첫 번째가 공기 좋고 쉼이 머무는 곳이다. 두 번째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후의 삶이든, 청년의 삶이든 농촌과 농업은 그 누구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품어 안을 수 있는 사람 사는 곳이다. 농촌을 떠나 마트자영업을 하는 후배도, 퇴직한 소방관 형님도, 50대 초반에 귀농한 동네 동생이 나와 함께 농민의 길, 진보의 길을 걸어가는 한 우리의 농촌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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