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지. 너를 알고 싶으니까”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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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갱이를 묻는 스승의 질문에 희옥이가 기어드는 소리로 말하였다.

“인이 아닐지요.”

“허면 인은 무엇이냐?”

“맹자는 측은지심을 인의 단서라 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물에 빠지면 뛰어들어 건져내는 마음이니 말 그대로 어질다는 뜻이 아닐지요.”

“인은 고갱이요, 본성이다. 그러니 인은 인간의 씨앗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짐승에겐 없고 풀에게도 없으며 인간에게만 있는 인간의 중심이 곧 인이다. 인으로 하여 예가 바르게 드러나면 천하를 다스리게 되며 마땅히 군자가 도달하려는 바일 것이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그를 위하여 학이며 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호 네가 아니라 희옥이가 맞다.”

잠시 말을 끓은 송진사는 병호에게 엄중히 일렀다.

“선비들이 활을 쏘는 것은 과녁을 맞히지 못함이 바람도 아니요, 절기도 아닌 오직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기 위함이다. 난을 치는 것도 그와 같거늘 어찌 과녁을 두고 허방에 시위를 당긴단 말이냐? 예가 이루어지면 천하란 절로 이루어진다. 과녁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매양 다른 곳에 시위를 당기니 네놈은 사시가 분명하다. 매를 가져와라!”

시렁의 회초리주머니를 내리고 행전을 풀자 바람 소리가 나면서 쐐기 쏘인 통증이 종아리를 감았다. 회초리가 감길 때마다 희옥이는 화등잔 같은 눈을 감았다 뜨더니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틀 적에야 매질이 끝났다. 병호가 회초리주머니를 시렁에 얹자 스승이 일렀다.

“닷새 후에 오너라.”

두 사람이 큰절하고 나왔을 때 봄볕은 나른하고 햇빛에 눈이 부셨다. 원평천 둑길에는 쑥이 머리를 내밀고 개울이 새처럼 지저귈 제 송사리 떼가 하얀 배를 뒤집으며 징검돌 밑에서 뛰었다.

“난 열 다섯인데…….”

나이를 밝힌 희옥이는 상대의 나이를 몰라 말끝을 흐렸다.

“나도 을묘생이야. 이제부터 놓는다.”

“아니 그래, 꼭 매를 벌어야만 직성이 풀리나?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나이 든 노친네란 자기들 아는 것만 옳다 하는 거 몰라?”

희옥이의 볼멘소리에 병호가 검지로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여기선 그게 되는데…….”

하고서 이번엔 가슴을 가리켰다.

“이곳에선 잘 안 돼.”

“너 고지식한 거 그 노친네하고 똑같아.”

“스승님은 누군가와 논쟁하면서 향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퇴계와 고봉이 그랬듯이 당신께서도 호서의 선비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논쟁을 하셨단 말야. 어쩐지 내게 그런 재미를 기대하시는 건 아닌지……. 털도 안 난 병아리지만.”

“그렇다면 허구한 날 매를 치실 건 뭐야?”

“왜 그럴까?”

병호는 풀무리에 앉아 잔디 대궁을 뽑아 씹었다. 희옥이가 무릎을 쳤다.

“널 귀애하시는 게야. 노친네…… 그렇다고 눈치를 다 들킬 건 뭐람. 내 따위야 먼 인척이라 문안드리러 가면 앉힐 뿐이지. 과거를 치를 것두 아니니까. 우리네는 아전 집안이다.”

희옥이는 남 얘기하듯 집안 내력을 털어놓았다. 병호의 시선을 느낀 그가 돌을 집어 물수제비를 떴다.

“중인이라고 과거를 못 볼까? 정조 임금은 서얼도 중용했는데.”

“전보단 풀렸어도 한 번 법도를 세웠는데 그런 세상에 끼워달라고 사정하긴 싫어.”

제 삶의 갈피를 정해버린 그가 병호는 부러웠다.

“그런데 어째 한 달에 한 번만 오는 거야?”

“조카를 만나러.”

“조카? 한 달에 한 번씩 조카를 만나러?”

부모도 아닌 조카를 보러 온다는 말이 이상도 하려니와 아무 때나 오면 되지 날을 정해놓는다는 것도 수상쩍었다.

“예서 내 사는 곳이 멀기 때문이지. 말하자면 길어.”

“잠자코 들을 테니 어디 말해봐.”

“남의 집안 궁상맞은 일이 무에 궁금하다고.”

“궁금하지. 너를 알고 싶으니까.”

담아둘 말을 했다는 부끄럼에 병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난 전주 북쪽 봉상에 산다. 그 옆 우동면에 육촌 형님이 계셨다는데 나이 층하가 커서 얼굴은 본 적이 없어. 아무튼 항렬로는 형님뻘인데 그이 역시 아전으로 축재를 했다고 들었어.”하면서 희옥이는 한 집안의 이력을 차근차근 풀어냈다. 송희옥이 말하는 우동면 육촌 형님은 이름이 송두옥이라 하였다. 아전으로 축재했다면 수령과 합세하여 얼마나 토색질을 했을지 안 보고도 알 노릇인데 전주 부사를 겸한 감사가 새로 부임하면서 일이 터졌다. 안동김씨 일문에 뇌물을 먹이고 자리를 차지한 감사는 다른 인사가 부임하기 전에 뽑아먹고자 전주부의 수리(首吏)와 짜고서 마땅한 자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부녀를 농간했다는 죄목부터 각종 올가미를 씌워 일착으로 걸려든 송두옥을 옥에 가두고 곶감 빼먹듯 십만 냥을 우려먹었다.

만신창이가 된 송두옥은 집까지 탈탈 털리고 풀려났지만 그 길로 자리보전을 하다가 어린 자식을 두고 눈을 감아버렸다. 슬하에 이남이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머리 깎고 중이 되는 바람에 입 하나는 덜었지만 남은 삼 남매를 건사할 길이 막막해 부인 박씨는 한양에 가기로 결심하였었다. 그러나 남은 자식이 줄줄이라 차남 하나를 출세시키기로 하고 큰딸을 인척에게 떨구었다. 큰딸을 입양한 종정마을 여산송씨네는 촌수가 멀더라도 송두옥이 만석 재산을 굴릴 적에 도움을 받은 바 있어 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랬는데 박씨 부인과 올라간 자식 중에 스님인 형을 만나고 온 차남이 저까지 머리를 깎겠다 밝히므로 아들을 둘씩이나 절간에 바친 박씨는 상심 중에도 콩나물 장사를 하며 형제를 수발하였다. 세월이 흘러 출가한 아들 둘은 헌헌장부가 되었고, 장남보다 차남이 두각을 나타내 노장들도 함부로 대지 못할 도량으로 성장하였다.

유난히 눈이 치던 지난겨울 그 스님이 진안 금당사에 들렀다가 송희옥의 아버지를 인사차 찾아왔었다. 그날 댁네에 인사를 마친 스님이 송희옥을 콕 집어 금구에 가자 요청하므로 따라나서고 보니 양딸로 간 누이를 만나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조카뻘인 스님의 누이를 보았는데 항렬은 낮지만 나이는 또 희옥이보다 네 살 많았다. 그사이 만날 길이 없어 애를 태웠건만 스님이라 그런지 오라비는 남처럼 데면데면하였고 여동생만 스님의 장삼 자락에 눈물을 뿌렸다. 그랬던 스님이 둘만 남자 가끔씩 동생을 찾아 달라 간청하는 게 아닌가. 한 달에 한 번 죽으나 사나 팔십 리를 걸어 조카를 보러 오게 된 송희옥은 그때마다 인척간의 예로 송진사를 찾아다녔다. 생전의 송두옥으로부터 후의를 입었다는 송진사는 희옥이를 병호 옆에 앉히지만 실은 보은을 행하는 일이었다.

“어른도 많은데 스님은 왜 어린 아재비에게 동생을 부탁했을까?”

병호가 궁금한 것을 묻자 희옥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이야기를 듣고 난 병호는 희옥이가 더욱 만만치 않게 생각되었다. 나이 많은 조카라도 책무를 한다는 마음으로 매월 팔십 리 길을 걷는다는 말 자체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끼니 걱정을 하는 형편이나마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저는 파리한 서생이 되는 중이지만 희옥이는 무언가 감당하기로 한 자였다.

“인차 봉상에 갈 참이구나?”

병호는 머리꼭지에 오른 해를 보았다.

“가야지.”

수류면 읍내에서 길을 갈라야 했지만 서운해져 병호는 마저 희옥이를 따라갔다. 금구 향교까지 배웅한 뒤 밥때가 지나 이모할머니 댁에 와보니 기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업이 이제야 끝난 것 같지는 않구나.”

모처럼의 대면이라 큰절을 올리자 기창이 말하였다.

“먼 길 가는 동무를 배웅하였습니다.”

기창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엄격한 눈으로 아들을 보았다. 그는 거야마을에서 십 리 남짓한 황새마을에 빈집이 나와 둘러보러 온 길이었다. 처음 송진사를 만나러 갈 때 집을 알아보겠다 하였으나 이 년 동안 진척이 없던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입격하면 그게 스승님에 대한 보답이다. 명심해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병호는 기창이 화가 났다고 짐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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