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의 동무를 알게 되다

  • 입력 2023.11.12 20:57
  • 기자명 이광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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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 뭍으로 가는 배가 뜬다 하여 필상은 선두포에 나왔다. 배는 군선인데 전투를 기록하고 장졸들의 공적을 기재한 장계를 전하기 위해 양헌수가 띄운 것이었다. 집에서 인사를 나누었건만 다금발이가 나올 것 같아 필상이 뒤를 돌아보자 녀석이 인파를 뚫고 나타났다.

“선비님 이거요.”

그가 보자기에 싸인 수발총을 내밀었다.

“나중에 작은 서방님께는 선비님이 훔쳐갔다고 할게요. 이건 선비님 물건이에요.”

필상이 총을 건네받았다.

“돌아가거든 꿩 사냥이나 다녀야겠다.”

“전라도 금구라고 하였지요?”

“수류면 거야마을이다.”

곧 배가 출발한다 하여 한 번 더 작별한 뒤 필상은 배에 올랐다. 돛이 펼쳐지고 도선장에서 나온 배가 초지진 앞바다를 돌아 터진개에 접어들었다. 배는 한강을 거슬러 마포에 닿는다는 것인데 지체하지 않고 고향에 내려갈 생각이었다. 열 살 되던 해에 훈장을 초빙하여 십 년간 사서와 경서를 배운 후 책을 손에서 놓았었다. 서권에 파묻힐수록 어쩐지 세계는 더욱 쭈그러들고 완고함은 깊기만 하여 사람이 못쓰게 될 것 같았다. 집안의 어떤 인사가 세도가의 연줄을 타고 벼슬을 구걸한다는 소리에 절골 제각의 문중회의에서 재떨이를 던지며 싸운 일이 발단이었다. 과거가 장바닥의 사고파는 물건으로 전락하고 걸핏하면 이양선이 나타나 총포를 쏜다는데 언제까지 똬리를 튼 채 서책에 몰두할 것인가. 공자는 젊은 날 미천한 신세였으므로 많은 일을 안다(吾少也賤 故多能鄙事) 하였는데 십 년 동안 글을 읽어 문맹을 면하였으니 다음 십 년은 세상을 떠돌리라 결심하였었다. 혼인을 하였지만 집에 붙어 사는 일에 그는 흥도 보람도 느낄 수 없었다.

배가 한강 어귀에 들어설 무렵 듬직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죽이 맞는 동무가 가까이 있으면 생기가 돌 것 같았다. 한 달 남짓 강화도에 머물며 이양선을 목격하고, 양이가 침범하는 것을 몸소 겪고, 대대로 은택을 입은 양반님네가 국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는 똑똑히 목격하였던 것이다. 다금발이라는 노비 아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군사를 통솔하는 자의 위엄과 권위라는 게 징병된 포수들에겐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지, 난리를 몸으로 겪는 백성은 어떤 절망과 불의를 품고 사는지 실감하였던 것이다. 세상은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하며 파고들어 익혀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자각한 셈이었다. 그는 돌아가서 무엇을 다시 보고 무엇을 새겨야 할지 사냥을 하고 들을 쏘다니며 궁리할 작정이었다. 나이와 신분을 떠나 가슴을 찢어 열고 마음을 꺼내 보일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그때 필상은 배 위에서 염원하던 것이었다.

3장 이산저산 꽃은 피고(1869)

첫해 여름부터 이태 동안 병호는 아침 먹으면 송진사의 사랑에 꿇어앉았다. 전에 기창에게 배웠던 것을 없던 일로 치부하고 소학이며 경서를 처음부터 시작하였는데 과제가 혹독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뜻을 익히는 일은 송진사와 더불어 하였으나 그 또한 미리 준비하지 않아 면전에서 쩔쩔매는 것을 그는 죽기보다 싫은 일로 여겼다. 그런데 그보다 가혹한 일은 경서 한 권을 열흘 만에 외우도록 요구하는 것이었으니 밤을 밝히기 일쑤였고 매번 코피를 쏟았던 것이다. 송진사의 수학은 강회(講會)에 초점을 맞추므로 외우는 일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년이 지나자 송진사는 닷새에 한 번꼴로 찾아오라 일렀고, 묻고 답하고 외우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따로 운필(運筆)을 강조하였다. 병호에게 글을 쓰게 하여 자획을 살핀 후 획이 굳고 자형이 날카로우며 굴하지 않는 성정이 지나치므로 굴리고 다듬고 물 흐르듯 유연하기를 당부하였다. 그러며 전주에서 만든 종이를 한 아름씩 안기고는 점획과 접필에 매진하도록 요청하였다. 송진사는 또 시를 중요하게 여겨 운과 구를 설명한 뒤 두보를 교과서 삼아 강론하였으며 시험과목이기도 하려니와 높은 경지에 이르는 수양으로도 시작(詩作)을 강조하였다. 그가 지어오라 하여 원평천의 황새를 관찰하고 쓴 율시를 내보이자 다른 일에 관하여는 꾸중이 많던 스승이 이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自在沙鄕得意遊 하이얀 모래밭에

홀로 한가로우니

雪翔瘦脚獨淸秋 흰 나래 가는 다리

가을빛이 완연쿠나.

蕭簫寒雨來時夢 찬비 쓸쓸할 제 꿈속에

젖어들고

往往漁人去後邱 고기잡이 돌아가면

언덕에 오르네.

許多水石非生面 허다한 수석은

낯설지 않건마는

閱幾風霜已白頭 험한 풍상에

머리 벌써 세었구나.

飮啄雖煩無過分 쉴 새 없이 쪼고 마셔도

분수를 아노니

江湖魚族莫深愁 물고기들이여,

너무 근심치 말지어다.

그즈음 병호는 또래의 어떤 녀석을 알게 되었다. 고창 서당마을 살 때는 단수수 껍질을 함께 벗겨 먹던 동무가 없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고 그를 슬퍼하는 외동아들에게 새로운 풍토를 겪게 하련다고 기창이 고부 진선마을에 터를 잡은 후로는 동무를 사귈 기회가 없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움을 청하느라고 금구 거야마을에 따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언제나 혼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초부터 송진사의 사랑에는 공부인지 남 공부하는 구경인지 한 달에 한 번꼴로 나타나는 녀석이 있었다. 키 작은 것이 집안 내력이라 그때도 병호는 코흘리개보다 달리 크달 게 없었지만 녀석은 훌쩍 솟아 앉아서도 병호의 선 것과 맞먹었다. 병호는 성근 수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녀석은 턱 전체가 거무스름하여 한층 어른스러웠다. 이름이 송희옥인 것을 알 뿐 어찌 한 달에 한 번 나타나는지 병호는 반드시 연유를 물어보리라 별렀었다.

꿇고 앉은 발이 저리는지 희옥이는 몸을 꼬는 중이었다. 송진사가 질문하면 곧잘 답하는 것으로 보아 경서를 읽은 듯했으나 그 판에 들 뜻은 없는 눈치였다. 병호가 스승의 질문에 답하며 넘겨본 바로는 고개를 수그린 채 기름먹인 장판지를 깔짝대고 있었다. 솥뚜껑만 한 손이라 손톱 하나가 여느 사람 엄지발톱만이나 해서 아까부터 병호는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하품을 무는 녀석의 심사를 병호가 모르지 않을 터에 송진사가 눈치 채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끝내기 전에 온 보람이 있어야 하니 희옥이도 답을 해보아라. 『논어』는 처음을 어떻게 시작하느냐?”

답하기 쉽게 경서의 기초가 되는 것을 물은 듯하였다. 변성기가 끝나 자갈돌 부딪는 소리로 희옥이가 답하였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呼)라 하였습니다. 배우고 반복하여 익히는 일이야말로 다시없는 기쁨으로 평생에 걸쳐 중단하지 말 것을 권하는 말입니다.”

“허면 그때의 학은 무엇이냐?”

“육예(六藝)를 일컫는 것으로 주자는 예, 악, 사, 어, 서, 수(禮樂射御書數)라 하였습니다. 예법과 시서를 포함해 무예도 익히며 천문에도 밝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학습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냐?”

“인(仁)을 고양하여 예(禮)의 절차가 바르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희옥이는 부족함 따위 따지지 않고 아는 대로 대답하였다.

“그러면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는 어찌 말해야 하느냐?”

“뜻 맞는 동무와 더불어 학문을 논하는 것이 지극한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송진사가 병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외에 다른 뜻은 없느냐?”

스승의 질문에 병호는 한숨을 쉬었다.

“어찌 학습이 경서만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경서를 읽고 뜻을 헤아릴 뿐 아니라 한세상 경영하겠다는 포부를 품는다면 그 역시 같은 일일 것입니다. 같은 뜻을 품은 동지와 포부를 나누어 갖고 맡은 바를 점검하며 상의할 때 대장부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하시며 품은 뜻이 그것 아니었을지요.”

병호는 봄볕에 다사롭던 방 안 공기가 출렁이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에게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고갱이가 무엇이냐? 희옥이가 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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