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④ 케이블카 타고, 돈가스 먹고, 전망대에 오르다

  • 입력 2023.11.12 18:00
  • 수정 2023.11.12 20:58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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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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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9월, 남산 팔각정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기공식이 열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2년 4월에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케이블카가 이때 처음 선을 보인 것이다.

케이블카의 시내 쪽 승강장은 중구 회현동 산1번지, 지금의 숭의여대 옆이다. 거기서부터 팔각정 인근의 도착지점까지는 600여 미터에 불과했기 때문에, 탑승 시간이라야 겨우 3분 남짓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탔다 하면 내릴’ 준비를 해야 할 만큼 잠깐이었는데, 그럼에도 그 짧은 경험을 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행렬이 승강장 매표소 앞에 길게 이어졌다.

“개통할 당시의 요금은 편도 250환, 왕복 400환이었어요. 서민들에게는 꽤나 부담이 되는 액수였지요. 탑승 시간이 짧으니까 금방금방 손님을 갈아 태울 수 있고, 또 두 대가 번갈아 다녔으니까 회전이 빠른 셈이었는데도, 승강장 앞 도로변은 언제나 장사진이었지요. 여태껏 땅 위로 다니는 버스나 기차만 타다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차를 타본다는 게 신기하잖아요. 특히 시골에서 상경한 노인들은 그걸 타보고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 큰 자랑이었으니까요.”

남산식물원 최상인 원장의 회고다. 참고로 개통한 지 두 달 뒤인 같은 해 6월에 군사정부에 의해 환(圜)에서 원(圓)으로 화폐개혁이 단행되었고, 따라서 편도 승차권의 요금 표기는 ‘250환’에서 ‘25원’으로 바뀌었다. 물론 케이블카에도 안내원이 있었다.

-자, 하산하는 손님들 다 내렸지요? 다음 분들 차례차례 올라타세요!

-아범아, 요놈을 타면 공중으로 날아가서 남산 꼭대기까장 데려다준다, 시방 그 말이제?

-예, 아부지. 가만있어도 지가 알아서 다 데려다 줘요. 엄니도 무서워 말고 얼른 타세요.

-나는 차를 타기만 하면 멀미를 하는디…요놈 탔다가 멀미 나면 큰일인디.

-아이고, 엄니도 참. 멀미 날 새도 없이 금방 도착해버릴 거니까 그런 걱정일랑 마세요.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시절이라, 공중으로 날아가는 차를 탄다는 건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케이블카를 혼자서 타는 경우는 드물었고, 가족 단위로 탑승하거나, 젊은 축은 연인과 함께 타는 것이 보통이었다.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한다.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팔각정자 옆에는 양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쭈뼛거리다가 그 식당에 들어간 사람들 중 상당수는, 포크와 나이프라는 생소한 도구를 들고서 난생처음으로 서양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을 한다. 연인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올라간 다음,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면 당시로서는 최상의 데이트였다.

1980년대에 남산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남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서울타워에 올라보고 난 다음에라야 남산 구경을 제대로 했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애당초(1969년)에는 TV와 라디오 방송을 수도권에 송출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종합 송신탑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전망시설을 갖춘 다목적 탑으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사업 규모가 커졌고, 6년 만인 1975년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전망대는 개방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인기 최고였지요. 고속 엘리베이터로 전망대에 올라가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였을 뿐 아니라, 비가 온 다음에 날씨가 갠 날은 인천 앞바다도 보이고, 멀리 개성의 송악산도 보인다고들 했어요.”

모처럼 전망 좋은 곳에 올랐으니 기념촬영이 빠질 수 없다.

-우리가 여길 언제 또 와보겠어요. 기념으로 사진이나 한 장 찍읍시다. 다들 이쪽으로 서봐요. 시내 전경이 잘 나오게 찍어줄 테니까. 자, 찍습니다. 하나, 두울….

그때 벼락같은 호통 소리와 함께 경비원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당신들 카메라 뺏기고 싶나! 여기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라는 경고문 안 보여!

1975년에 전망대를 완공해놓고도 5년 동안이나 일반에 개방하지 않았던 것은, 거기 올라가면 청와대가 보인다는 보고를 받고서, 박정희가 ‘공개 불가’를 명했기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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