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수천 평 야트막하게 비탈진 밭고랑 사이사이마다 태국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이 점점이 자리 잡고 있어 찾아가는 길, 아침 이슬이 맺혀 있는 무밭 사이를 지나가니 청바지가 이내 물기로 흥건하다. 사뭇 추워진 날씨에 겹쳐 입은 옷 위로 방수복까지 입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일방석을 착용한 채 제 팔뚝보다 굵은 무를 뽑아 비닐에 담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밭 위쪽에서 바라보니 무 이파리로 파릇파릇했던 밭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 같다.
한 손으로 밭에서 ‘쑤욱’ 무를 뽑을 때마다 이파리에 맺힌 이슬이 사방으로 튕긴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무 다섯 개씩을 비닐에 담아 ‘국내산 우리농산물 산지직송’이 적힌 붉은 띠지로 감싸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손놀림은 예사롭지 않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여성들은 무 수확, 포장에 전념하고 남성들은 동료들이 갈무리해 놓은 무를 트럭 적재함에 차곡차곡 실어 밭 위쪽 농로에 주차 중인 5톤 트럭으로 옮겨 싣느라 분주하다.
지난 8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 들녘, 가을걷이가 끝나 볏짚 더미만 덩그러니 쌓여있는 황량한 논과 다르게 비탈진 밭 곳곳은 수확을 앞둔 무와 배추로 여전히 초록빛이 가득하고, 또 그 밭에서 수확 작업에 여념이 없는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늦가을 농번기의 한철을 지나고 있다. 김장 시기에 맞춰 지난 8월 중순 파종해 90여 일을 키워 출하하는 무는 지금 이 시기가 바로 대목이다.
이날 만난 한 농민은 “수천, 수만 평씩 경작하는 무, 배추밭은 외국인노동자들 없인 작업이 안 된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이젠 외국인노동자들이 직접 인력반도 운영하고 차량 운행도 할 정도”라며 고령화돼버린 농촌에서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위상에 대해 말했다.
언뜻 보기에도 30~40대의 젊은, 외국인노동자들이 한여름 파종부터 늦가을 수확까지 ‘우리농산물’ 생산에 구슬땀 흘려가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시나브로 마주한 농업·농촌의 현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