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급식 결정권 틀어쥔 옥천군 … 민간은 ‘시키는 일’만?

민간 역할 대폭 제한한 옥천 공공급식 부분위탁안, 군의회 통과
공공급식 맡아온 옥천살림 “민·관 협의체 통해 계획 수립해야”

  • 입력 2023.11.10 11:25
  • 수정 2023.11.10 11:2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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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6일, 옥천살림 조합원 등 지역주민과 인근 지역 소비자들이 충북 옥천군청 앞에서 연 ‘옥천군 공공급식 부분위탁(안) 철회 기자회견’.
지난 6일, 옥천살림 조합원 등 지역주민과 인근 지역 소비자들이 충북 옥천군청 앞에서 연 ‘옥천군 공공급식 부분위탁(안) 철회 기자회견’.

충청북도 옥천군(군수 황규철)이 지역 공공급식 운영체계 ‘개편’ 과정에서 그동안 옥천 친환경 공공급식 발전 노력을 기울여 온 민간영역 주체들을 사실상 배제했다. 공공급식 예산 및 결정권은 행정당국이 움켜쥔 채, 민간주체들에겐 식재료 조달·검수 등 ‘행정당국이 시키는 일’만 맡긴다는 내용의 공공급식 체계 개편안이 지난 6일 옥천군의회 산업경제위원회에서 가결됐다.

지난 9월, 옥천군은 ‘옥천형 공공급식 운영체계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옥천푸드유통센터(타 지역의 먹거리통합지원센터 또는 공공급식지원센터와 같은 역할 수행) 운영을 민간(옥천살림협동조합)에 위탁했던 내용을 뜯어고쳐 △급식센터 운영계획 수립 △수주·계약 관리 △공공급식 관련 위원회 관리(업체 선정, 가격 결정 등) △식재료 표준화 및 코드 관리 △수요기관 협력체계 구축 △위탁업무 지도·감독 등 공공급식 관련 핵심 역할은 옥천군이 직접 수행하게 하고 민간에는 식재료 조달·검수 등의 역할만 ‘부분위탁’한다는 게 이 방안의 골자다.

2015년 옥천군과 옥천푸드유통센터 위·수탁 협약을 맺은 이래 공공급식 운영을 맡아온 옥천살림협동조합(이사장 한중열, 옥천살림)은 지역 농민·소비자들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이다. 옥천살림은 옥천군이 지역 공공급식에 별 관심을 안 보이던 2008년부터 관내 초·중·고 19개소 및 어린이집·유치원 32개소에 백미를 공급했고, 2010년부턴 어린이집 27개소에 무상 급·간식 공급을 시작하는 등 지역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0년 10월엔 2010년산 무농약 벼 310톤 수매 협약을 맺기도 했다.

옥천살림 측은 옥천 행정당국의 ‘부분위탁안’이 실제론 옥천살림 등 민간주체를 철저히 배제하는 직영안이자, 부분위탁 시도는 “20여년 간 축적된 인적·물적 자원과 공적 자산을 일시에 허무는 자해행위”이며 “20여년 동안 먹거리정책을 주요하게 담당한 생산자조직·법인과는 한마디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강행하는 것은 심각한 민·관 협치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옥천군의회 산업경제위가 부분위탁안 가·부결을 판가름하는 날이었던 지난 6일, 옥천살림 조합원 등 지역주민과 인근 지역 소비자들은 옥천군청 앞에서 ‘옥천군 공공급식 부분위탁(안) 철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옥천군과 옥천군의회에 △옥천군 공공급식 부분위탁안 보류 뒤 민의(民意) 경청 △먹거리정책을 논의할 열린 토론회 참여 △민선 8기 먹거리정책에 대한 황규철 옥천군수 및 이현철 옥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의 소신과 책임 천명 △민간주체와의 정책협의체 구성으로 푸드플랜 기반 공공급식 운영계획 수립 등을 촉구했다.

옥천군민과 연대하고자 기자회견에 참가한 김인원 한살림대전생협 이사장은 “민·관 협치로 공적 먹거리의 지역 선순환체계를 만든 옥천 사례를 본보기 삼는 지자체들이 많은 가운데, 옥천 주민자치 체계가 위협당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주민자치로 20여년 간 만들어온 옥천의 먹거리 공공성이 한순간에 행정당국의 일방적 정책으로 인해 위협받는 현실은 전국 타 지자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옥천의 주민자치가 이어지도록 관(官)에서도 노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공급식 부분위탁안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분위탁안은 기자회견 직후 열린 옥천군의회 산업경제위에서 찬성 4표, 반대 1표(송윤섭 옥천군의원만 반대)로 가결된 데 이어, 지난 8일 옥천군의회 제310회 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찬성 6표, 기권 1표, 반대 1표로 통과됐다. 역시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송윤섭 의원뿐이었다.

한편 이에 앞서 지난 3일, 충청북도먹거리위원회(공동위원장 김영환 충북도지사·윤병선 건국대 교수, 충북도먹거리위원회) 또한 황규철 옥천군수에게 “(부분위탁안으로 인해) 그간 옥천군이 민·관 협치를 바탕으로 일궈낸 성과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전한 뒤 “중소농·고령농·여성농·귀농인의 조직화를 통해 이뤄낸 옥천의 보물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관계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지난 20여년 간 옥천군이 먹거리를 매개로 보여준 주민자치와 민·관 협치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군수가 직접 나서 갈등이 해소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 달라”고 건의했다.

윤병선 공동위원장 등 충북도먹거리위원회 대표단은 황 군수에게 지난 3일 직접 건의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11월 13일에나 가능하다”는 옥천군 측 답변을 듣고 서면으로 건의문을 전달해야 했다. 황 군수 및 이현철 옥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 등 행정당국 책임자들은 충북도먹거리위원회 대표단이 위 내용의 건의를 위해 직접 옥천을 방문했음에도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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