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81] 사과나무와 농부

  • 입력 2023.11.12 18:00
  • 수정 2023.11.12 20:5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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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지난주부터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지면서 이제 초겨울에 접어든 듯하다. 지난주 영동지방에 몰아쳤던 거센 비바람으로 곧 수확하려던 우리 집 후지 사과는 거의 다 떨어졌다. 돌풍과 떨어지는 과정에서 상처가 난 과일이 많이 눈에 띈다. 물량이 적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수확을 하루 이틀 앞두고 가슴이 아팠다. 다음 날 모질게도 나무에 아직 매달려 있던 사과까지 모두 수확해 일단 저온저장고에 넣어 뒀다. 상처가 작고 품위가 괜찮을 것 같은 물량은 기껏해야 20~30kg에 불과할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금년도 사과 농사는 마무리됐다.

사과나무는 봄이 오면 꽃피우며 열매를 맺고, 여름이면 나무와 열매를 키우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성숙하게 하고 맛을 낸다. 그렇게 열심히 과일을 키워내던 사과나무는 겨울이 오면 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긴 동면에 들어간다.

그래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과수원은 봄에는 화려한 꽃동산이 되고, 여름이면 싱그럽고 무성한 숲이 되며, 가을이면 노란색과 빨간색의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풍성한 장관을 이루고, 겨울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한 해 사과 농사를 마무리하고, 요즈음 같이 날씨가 추워지는 날 과수원 농막에 앉아 사과나무들을 바라보면 대견스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한 해 동안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엊그제까지도 과일을 생산해낸 저력이 대견스럽고,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비쩍 마른 모습이 왠지 안쓰럽고 미안해진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그래도 내년 봄이 오면 다시 활기차게 움트고 꽃 피고 열매 맺는 화려한 가을을 기대할 수 있으니 그래도 조금은 덜 미안하다.

그러나 점점 나이 들어가는 인간, 즉 나는 어떨까. 지난주 40년 지기 동갑내기 친구의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했다. 꼭  참석해 축하를 해줘야 하는데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참석이 어렵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뜸 말하기를 ‘자신의 나이를 깜박 잊고 사과 농사에 너무 과로했구만’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나 나나 벌써 일흔 고개를 넘어 섰다. 마음은 아직도 젊고 혈기도 왕성하고 급한 성격들도 그대로인데 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건강하게 사는 건강 나이는 평균 74세 정도라는 것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이 들어갈수록 건강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즈음이다.

초보 농사꾼이 유기농사과 농사에 올인한 8년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그만큼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고, 또한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재미가 없는 일을 8년간 했다면 분명 시간은 느리게 갔고 지루했을 것이지만 사과 농사를 하는 지난 8년은 빠르게 지나갔다고 스스로 생각하니 다행이다.

8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60대 초반이었을 터이니 지금보다 많이 젊고 건강했을 것인데, 그 건강이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착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는데, 건강은 빠르게 약화됐다는 사실을 근래에서야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 과수원의 사과나무는 지금은 앙상한 듯하지만 앞으로 수십년 간 꽃피고 열매 맺는 장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점점 빠른 속도로 건강이 쇠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이 세상 인간의 삶의 여정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내년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작은 사과 농사를 계속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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