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기후재난과 농업

  • 입력 2023.11.12 18:00
  • 수정 2023.11.12 20:59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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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내가 사는 경남 합천군은 어느새 온 들녘이 마늘·양파로 가득 차 있다. 1모작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 황금벌판으로 출렁이던 들녘은 하룻밤 사이 시퍼런 논으로 변해갔다. 때아닌 9월 장마로 시작 시기가 늦어지다 보니 마늘 심을 논들은 완전 전쟁터였다.

주위에 마늘·양파농사를 많이 짓는 농가들은 대형 트랙터만 기본 두 대를 갖고 있다. 가격만 해도 억대가 넘는 고비용 농기계다.

트랙터 한 대는 논을 가는 데 사용하고 또 한 대는 이랑 짓고 약 치고 피복 용도로 사용한다. 부착 농기계를 뺐다 끼웠다 안 해도 되기에 그만큼 농작업은 빨리 진행된다.

우리도 예전 같으면 10월 15일 전에 끝났어야 할 마늘 심기가 이제야 끝이 났다. 9월까지 이어진 폭우로 시작이 늦기도 늦었지만 8,000평이나 되는 논을 직접 준비하다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 것이다.

먼저 논 2,000평에 마늘을 심기 위해 사용 용도에 따라 트랙터 부착 농기계들을 뺐다 끼우면서 하루는 거름을 깔기 위해 굴삭기와 덤프트럭까지 동원됐다. 거름장과 논이 떨어져 있다 보니 트랙터 트레일러로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이다. 하여 이틀은 거름 깔고 하루는 논 갈고 하루는 이랑 짓고 약을 친다. 여기에 비닐을 씌우는 데만 또 하루가 걸린다. 기계가 애를 먹이면 하루 더 늘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렇게 해서 마늘 심을 2,000평 논 장만에만 최소 5일이 걸린다. 거기에 일꾼을 해서 마늘을 심으면 일주일이다.

2,000평씩 총 8,000평 가까이 심었으니 거의 한 달이 걸린 셈이다. 남의 손을 빌렸으면 빨리했을 테지만 차 떼고 포 떼면 남는 게 없으니, 논 장만이라도 자가로 해야 그나마 손해를 덜 볼 수 있다. 마늘 심는 인건비만 해도 1,200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여기에 들어가는 농약대, 비룟값, 유류비, 굴삭기·덤프트럭 사용료까지 합하면 2,0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마늘 8,000평 심는데 자가 노동비는 제외한 사전 농업생산비만 2,000만원 넘게 들었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드는 농업생산비와 수확기 인건비, 농자재비 등은 그만큼 또 들 것이다. 잘 지어야 본전이다. 그나마 가격이 좋으면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정부의 농산물 수입 일관 정책과 요상한 기후변화에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기후재난은 점점 더 농업과 농민을 위태롭게 한다. 거기에 정부는 수입농산물로 기름을 붓는 격이다.

올해 초 마늘 수확기가 그러했다. 때아닌 폭우로 마늘 농가는 다 키운 자식 같은 마늘이 썩어나가는데 구경밖에 할 수 없었다.

농업 생산비는 날로 높아만 가고 작물을 심어도 수확할 때까지 수확물을 보장할 수가 없다. 거기에 가격은 더, 더, 더 모르는 일이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기미가 보이면 농산물 수급 정책이란 이름으로 농산물을 수입하는 탓이다. 마늘, 양파, 고추가 그러했다.

올해 딸기 농가는 예년과 같이 정식을 했지만 유독 모종이 많이 죽는다고 한다. 아마도 정식시기에 하우스 온도가 50도가 넘는 기온 탓이었을 것이다. 또 사과와 단감은 탄저병으로 수확량이 급감해 소비지에서 ‘금사과’, ‘금단감’이라고 불리었지만 생산자인 농민들은 결코 기쁘지가 않았다. 그만큼 농사짓기도 힘이 들고 수확량이 급감해 높은 가격이라 해도 팔 게 없고 정부에서는 또 바로 수입농산물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단감 농사를 짓던 한 젊은 농민이 추석 연휴에마저 탄저병으로 단감이 걱정돼 농막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실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기후변화 앞에, 기후재난이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지 모르는 현실이다. 11월이 됐는데도 낮 기온이 25도가 넘고 때아닌 벚꽃까지 피었다. 기후변화에 맞게 민간보험이 아닌 정부의 적극적인 농업재해보상법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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