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③ 팔각정 가는 길에 잡상인 단속반이 떴다!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5 18:1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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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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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순환로에서 정상의 팔각정에 오르는 길이 포장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고, 1970년대엔 그냥 흙바닥 길이었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남산을 찾았지만, 주말이 되면 몰려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최상인 남산식물원 원장은 회고한다.

“그 시절에는 입장료가 있었어요. 국민학생 이하의 소인은 100원, 중고생은 200원, 성인은 300원씩 받았지요. 사실 시민들의 세금으로 공원을 운영하고 개방한 것인데 입장료를 따로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당시 남산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은 정상까지 올라갔다 와야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했는지 팔각정으로 통하는 길은 오르내리는 인파로 몸살을 앓았지요.”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가엔 어디든 노점상이 몰리게 돼 있었다. 길 양쪽으로 몇 미터 간격을 두고 갖가지 장사치들이 봇짐을 펼치고는 호객을 했다.

-자, 삼천만의 영양간식 번데기가 왔습니다. 아가씨, 번데기 사세요. 뻐언!

-아저씨, 막걸리 한 잔씩 드시고 올라가세요. 빈대떡 안주도 있습니다!

-아이스께끼나 솜사탕 사세요! 꽁무니 쪽쪽 빨아먹는 소라도 있습니다!

남산 산책로에는 간식 혹은 주전부리를 파는 그런 소박한 행상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동그란 나무판자에다 상품 이름을 적어놓고, 회전하는 동안에 화살 모양의 송곳을 내리찍어서 당첨된 경품을 준다는 일종의 야바위 놀음이 있었는데, 일컬어 ‘뺑뺑이’라 하였다.

-뺑뺑인가 뭣인가 하는 이거, 우째 하는 깁니꺼?

-어서 오세요. 내가 뺑뺑이 판을 돌릴 테니까 이 화살 송곳으로 콱 찍으면 돼요.

-어데 보자. 와, 양담배도 있고 지포라이타도 있고…그런데 여기 찍으면 우찌 되는데예?

-아, ‘꽝’이라고 돼 있는 거기 찍으면 선물이 없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돈부터 내시고.

-흐음, 어젯밤에 돼지꿈을 꿨으이께네 어데 한 번 행운을 시험해볼까. 으이차! 에이, 껌 한 개가 뭐꼬? 그런데 판대기에 ‘꽝’은 와 이리 넓게 그려 놨노. 순전히 속임수다 아이가.

“잡상인들이 골칫거리였어요. 여기 식물원에서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뿐만 아니라 팔각정에서 장충단 넘어가는 노변까지 극성이었거든요. 물론 단속을 했지요. 길에서 파는 음식물의 경우 위생 문제도 있고, 특히 뺑뺑이를 비롯해서 종지에다 주사위 같은 거 넣고서 이리저리 움직인 다음에 어디 들었는지 맞춰보라는 야바위 놀음은 당국에서 엄히 단속하도록 했거든요.”

그래서 잡상인을 단속하는 전담 인원을 20명이나 두고 있었다. 드디어 단속반에 비상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 소식은 거의 동시에 잡상인들에게 전파되었다.

-단속반 떴어! 빈대떡 아줌마! 단속반이야 도망쳐!

-총각! 내 막걸리 통 좀 가지고 가!

-그냥 내버리고 도망부터 쳐요! 잡혔다 하면 경찰서 가서 벌금 물어야 돼!

당시에는 산책로에 울타리가 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잡상인들은 주섬주섬 보따리를 챙기거나 혹은 물건들을 길가에 그냥 내버려 둔 채로 산속으로 도망을 쳤다. 단속반원들 역시 시늉만 내서는 안 되고 산속까지 쫓아가야 했기 때문에, 단속반이 출동하는 날이면 남산자락 일대가 토끼몰이를 하는 것처럼 부산스러웠다고 최상인 원장은 얘기한다.

“보퉁이를 붙들어 안고 울고불고 통 사정을 해요.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여기 남산 산책로에서 행상하는 것이 생계수단인데 그 말을 믿을 수 있나요? 며칠 뒤에 보면 또 나와 앉아 있는데요, 뭘. 단속반원들도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물리기도 했지만 어지간하면 봐줬어요. 그땐 남산이 사람들하고 그렇게 밀착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정겨웠다고나 할까요.”

지금의 남산은 산림이 무성해서 산책 나온 시민들이 저만치에 두고서 관상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70년대 이전에는 잠자리 없는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 재워주기도 했고, 단속반에 쫓기는 행상인들을 오지랖으로 감싸 숨겨주기도 했다. 산과 사람이 맨살로 만나서 그렇게 함께 부대꼈으니… 최 원장의 말마따나 그때의 남산이 더 정겹기는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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