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밥 먹고 합시다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5 18:14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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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단잠을 잤든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든 상관없이 또 하루는 시작됩니다. 아침밥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서서 걷기 연습을 하고 여성농업인센터에 출근을 하면 몇 발치 앞선 농협건물 앞에 천막농성장이 보입니다. 천막에 회원들이 있나 살펴보며 사무실로 올라와 일을 하는 중에 며칠 전 들른 농성장에서 농민회 회원이 김밥을 먹고 있던 게 생각이 납니다. 회원들이 밥은 먹고 농성장에 앉아 있나 하는 걱정이 됩니다.

여주통합RPC의 규약을 개정하고 운영위원 구성을 조정해버리고 운영위원회의 벼 수매가 합의안을 파기하고 수매가를 낮춰 결정해버린 일들은 농협조합장 선거가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들입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의 사람들이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들이 듭니다.

보름 전 즈음 통장으로 들어온 선수매 자금을 보면서 이게 왜 이리 적어? 하는 질문을 남편에게 하였습니다. 논에 피도 많았고 병도 들어 소출이 확 줄었다는 남편의 궁색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선수매 자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온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몇 년을 모아야 이 땅을 살 수 있지? 한 푼도 안 쓰면 볍씨와 비료, 농약, 트랙터, 콤바인 값은 어떻게 하지? 먹고 살려고 농사짓는데 식구들 먹는 쌀은 있어야지? 하는 여러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종이를 들어 쌀값을 계산하고 땅값을 계산하다 꾸역꾸역 불거져 나오는 여러 가지 비용들 계산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종이를 구겨버렸습니다. 계산을 하다보면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가 나는 듯한 헛헛함과 쌀이, 먹거리가 이렇게 비용도 감당이 안 되게 팔려도 되는가 하는 착잡함과 농민이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나 하는 부당함이 밀려옵니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하루를 당당히 임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잔소리들, 밥을 안 먹고 새벽에 일을 하다보면 힘을 못 쓰고 낑낑대다 며칠 더 고생한 경험들이 채워져 밥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밥에 대한 신화로까지 비약을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 키울 때는 벼 타작을 마치고 집에 몇 가마니의 쌀을 쌓아놓고 아이들이 밥 먹는 것에 성의를 안 보이면 밥 안 먹으면 학교를 못 간다고 협박을 했고 아이들은 학교를 가기위해 빠른 수저질을 하였습니다. 아픈 이들에게 병문안을 가면서 쌀에 참깨를 섞어 죽을 쑤어 갔으며 지인들과 고기를 먹는다고 식당에 가서도 밥을 먹어야 고기도 들어갔습니다.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는 꼭 밥으로 대접을 했고 단체 활동을 하면서 간식을 준비할 때도 밥을 이용해 간식을 마련했고 식당에서 돈을 안 내는 사람보다 밥을 남기는 사람들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쌀을 생산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애쓰는데 밥을 남기냐? 하는 핀잔을 주었습니다.

농민이 봄부터 가을까지 땀 흘려 생산한 쌀값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에서 그동안 함께 했던, 쌀을 생산하는 농민위원들을 일괄 제명하고 그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의 벼 수매가 합의안을 지키지 않고 적자를 이유로 수매가를 낮춰 버렸습니다. 농민대회를 하고 천막농성장을 설치하고 지키기 시작한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수매가의 조정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농협이 조합원인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천사 역할을 해 줄 거라는 환상은 전혀 없습니다. 농민들은 농협에서 모판을 사고 농협에서 비료를 사고 농협에서 농약을 사고 농협을 통해 쌀을 수매합니다. 그런데 모판값도 비룟값도 농약값도 다 올라버려 생산비가 치솟고 있는데 정작 쌀 수매가는 낮춰 버렸습니다. 이 일을, 선거 치른 지 1년도 안 되는 조합장들이 감행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 대단한 사람들의 단합으로 거행된 수매가 낮추기에 맞서서 농민들이 농민대회로, 농성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더 대단한 사람들의 싸움을 응원합니다. 그래도 밥 잘 챙겨먹고 싸우면 좋겠습니다. 밥 먹고 힘내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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