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다양성에 숨은 수정(受精)의 원리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5 18:14
  • 기자명 권혁정(경북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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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정(경북 의성)
권혁정(경북 의성)

사람에게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으라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밥도 먹고, 채소도 먹고, 고기도 먹어야 한다. 건강의 기본은 다양한 영양분을 다양한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다.

사과 꽃은 충매화이다. 화분 매개 곤충이 없으면 결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자가불화합성(自家不和合性) 식물로 같은 꽃이나 같은 그루의 다른 꽃 화분이 수분하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수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과밭에는 수분수(受粉樹)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러 품종을 혼식해 왔다. 이와 함께 벌과 곤충들이 공존하면서 수정을 도왔다. 그런데 요즘 벌과 곤충들이 인간의 경제성을 위한 농약 방제와 환경파괴로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방제의 용이성과 관리의 편리성, 경쟁력 있는 품종 등 여러 이유로 단일 품종으로 식재를 많이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인간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매개 곤충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사과 밭에선 수정이 잘 안된다. 결실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농민들은 다른 꽃가루를 사서 하나하나의 꽃마다 꽃가루를 묻히는 일을 또 하게 된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자가수정을 막고 타가수정을 유발시킴으로써 유전적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사과 꽃의 결실과정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정치와 우리 사회가 자본의 논리·경제의 논리·이념의 논리로 획일화되는 순간 또다른 막대한 기회비용이 들어갈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 꽃에서 보듯이 획일화된 이념적 동질성은 새로운 대안과 결실을 맺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거대 양당은 자기편, 자기들의 이념적 주장만 존재하고 조금의 다름은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다. 이는 정치적 다양성을 저해하고 정치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된다.

검사 동일체가 국민 동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국 수천 명의 검사는 동일체 원칙에 따라 행동을 해 왔는지 모르나 전 국민을 하나의 이념, 하나의 동일체로 묶으려 하는 순간 그 사회는 새로움의 탄생이 없는 수정 불능의 불임 상태가 될 것이다. 여야 정당 또한 그 속에서 정치적 다양성을 잃는 순간 도태될 수밖에 없다.

조금 힘들더라도 시끄럽고 불편하더라도 건전한 비판과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 숨쉬어야 발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사과 꽃이라는 자연이 인간 사회에 주는 교훈일지 모른다. 한국 농업도 마찬가지다. 돈이 되는 작물, 돈이 되는 품목으로 획일화되는 순간 종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생태계는 파괴되어 식량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려 하지만 인간은 경제논리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다양한 먹거리를 도태시키고 사라지게 만든다. 언젠가는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게 될지 모른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수분수를 군데 군데 다양하게 심어서 결실이 잘 되는 과수원, 새로운 대안과 발전이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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