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재해피해는 농협이 알아서 해야?

농민이 출자한 농업협동조합

정부 지원 대상에서 누락돼

재해 손실은 결국 농민에게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8 10:2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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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침수로 고장난 채 방치돼 있는 불정농협 APC의 감자선별시설.
침수로 고장난 채 방치돼 있는 불정농협 APC의 감자선별시설.

지난 7월 중부지역 홍수 이후 피해 정리와 복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피해를 입은 지역농협 일각에서 불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농협은 본질적으로 농민들이 출자해 만든 비영리법인인데 정부가 재해 지원대책에서 제외하는 게 합당하냐는 문제제기다.

충북 괴산 불정농협(조합장 장용상)은 7월 홍수로 중간집계상 20억~30억원의 자산 피해를 입었다. 재고농산물이나 농기계 피해도 있지만 금액으로 따져 가장 큰 피해는 시설 피해다. 산지유통센터(APC)가 2m가량이나 침수된 탓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건조시설 등이 몽땅 고장나버렸다. 설비업체의 일정상 수리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방치돼 있는 장비가 태반이다.

리모델링 완성 직전에 침수 피해를 입어 가동이 막힌 불정농협 콩 선별시설.
리모델링 완성 직전에 침수 피해를 입어 가동이 막힌 불정농협 콩 선별시설.

농협의 손실은 조합 경영악화와 배당·환원사업 축소 등 농민조합원들의 손실과 직결돼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사업에선 이미 농민들의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선별기가 고장난 감자·표고 공선작업이 중단됐으며, 벼는 친환경·다품종 수매를 포기하고 추청 품종만 취급하는 실정이다. 소형건조기 7기의 수리가 늦어져 대형건조기 2기만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정책보조 포함 3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 중이던 콩 선별시설은 시공 막바지에 침수피해를 입어 제대로 가동해보지도 못한 채 10억원의 수리비를 들여야 할 판이다(시공업체와 책임 분쟁 중).

자본금 20억원 남짓의 농촌 영세 농협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지만 정부 재해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농어업재해대책법」은 농가와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까지는 지원 대상으로 규정해놨지만 농협은 누락했다. 농민들은 부족하나마 대파비·복구비를 지원받을 수라도 있지만 농협은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불정농협 관계자는 “피해지원 요청을 다 해봤는데 지자체를 통해 내려온 답변도, 농식품부에 전화해서 받은 답변도 모두 ‘안된다’였다. 금융점포에 지원이 안되는 건 수긍하겠지만 APC처럼 농민들과 직접 연결된 부분은 예외적으로 피해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답해했다.

불정농협 콩 저장시설. 멀쩡해 보이지만 침수로 전기조작이 안되는 상태다.
불정농협 콩 저장시설. 멀쩡해 보이지만 침수로 전기조작이 안되는 상태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예산이며, 덧붙여 정부의 정책의지 또한 높지 않은 상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 같은 큰 조직은 보험을 통해 재해를 해결해야 한다. 농업인들에게도 앞으론 보험정책을 확대하려 한다. 정부 재해지원은 보험금에 절대적으로 못 미치고 어떻게 보면 농업인 복지정책의 하나로 하는 개념”이라며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은 정책대상에 포함돼 있지만 농협까지는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보험을 들어놓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영세 농협을 괴롭히는 건 불확실성이다. 피해조사 기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공공대책이 아닌 민간보험인 만큼 ‘재해 보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농산물 재고 피해 보상 시 수매 원가만을 보상해 전기세·인건비 등을 농협이 떠안아야 하는 식이다.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농작물재해보험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원준식 불정농협 APC 본부장은 “정부가 논 타작물 재배를 권장할 때 우리 조합이 앞장서서 논콩을 장려했다. 수해 이후 차관이 찾아오고 희망적인 신호를 줘 추가지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다녀간 뒤로 싹 없어져버렸다. 벼를 많이 심었으면 피해라도 덜했을 텐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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