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청년이 주인되는 농촌

  • 입력 2023.10.29 18:00
  • 수정 2023.10.29 21:39
  • 기자명 김현지(전남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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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전남 곡성)
김현지(전남 곡성)

그런 농촌을 꿈꾸어 봅니다. 저는 마흔이 다되어 농사를 시작했지만, 몇 년 전부터 20,30대 청년들이 농사를 지으러 곡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겸면 항꾸네에서 운영하는 자자공(자연, 자립, 공유)이라는 한해살이 청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도시에서 일하다 지치면 농사나 짓지 하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농촌에 오면 얼마 못 버티고 다시 도시를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농사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데, 어린 나이에 당당한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청년들이 자자공의 문을 많이 두드립니다. 그래서 한해살이를 마치면 대부분의 청년들이 농부가 돼 지역에 정착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에 대한 생각은 이제 기후위기를 느끼는 17년차 농부인 저보다 훨씬 앞서있고, 생활 속 실천 또한 늘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청정곡성’이란 말이 무색하게 자연을 해치는 온갖 시설들이 들어서도 경제를 외치며 허가하고 있는 곡성군은 이 청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곡성에 산재한 농촌 파괴형 개발 행위와 기후위기 현장과 맞서는 몇몇 분들이 작년부터 곡성에도 제대로 된 기후단체를 만들자며 뜻을 모아 고민하고 공부했고, 이제 ‘곡성환경연대’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도 자자공 청년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기후위기, 오늘 실천하지 않으면 내일은 늦습니다!’ 강좌를 열어 진행하는데, 한 청년이 현수막을 자기가 만들겠다고 하며 종이를 붙여 현수막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야말로 기후위기 강좌에 딱 맞는 종이현수막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저녁을 드시지 못하고 강의에 오신 분들을 위해 두 청년이 간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마트에서 사는 인스턴트 음식이 아닌, 밭에서 나는 것들을 활용해 3강좌 내내 다양하게 준비해 오고 음료도 식혜와 미숫가루, 차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정겹고 따뜻한 강의는 처음이었습니다. 강좌에 모신 최병성 목사님, 한주영 사무총장님, 윤주옥 대표님의 강의도 참 좋았지만 청년들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강의는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9.23기후정의행진 때도 천에 직접 손글씨로 ‘농사가 투쟁이다’, ‘농사가 세상을 이롭게 한다’, ‘공사 말고 농사’라는 문구를 써서 이 땅의 농부도 기후위기에 당당하게 함께 한다는 것을 알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지역에 힘을 주고 톡톡 튀는 창의력으로 모두를 감탄하게 하는 청년들이 머물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습니다. 곡성군에서는 청년들에게 1년 동안 월세를 지원해 주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택도 없습니다.

점점 인구가 줄어들어 결국 소멸 위기에 있는 많은 농촌 마을을 살리는 길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오게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지역에서 고민하고 있는 청년기본소득도 가시화시키고, 무엇보다 살 집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는 정책이 시급합니다.

대부분의 60대가 마을의 청년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농촌마을은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먹지 않고 살 수 없고 앞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식량전쟁의 위협이 곧 닥칠 것입니다. 그때 농촌을 살리자는 이야기를 하면 늦습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정책만 고민할 게 아니라 -그마저도 제대로 고민하고 있지 않은 한심한 정부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농사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오면 가장 문제가 될 것은 식량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년들이 농촌으로 오게 하는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농촌도 소멸하고, 대한민국도 언제 난민의 위기에 처할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삶의 근간인 농촌을 살리고, 우리 힘의 근간인 청년이 농촌으로, 농촌으로 와야 우리는 거대한 기후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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