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손보, 손해평가사들에게 “피해율 60% 안 넘게 하라” 지시

수해 논콩 피해율 평가 시기, 보험사가 평가사에 피해율 하향 압박

현직 평가사 “피해율 70% 올리면 회사서 바로 전화해 욕설까지”

  • 입력 2023.10.29 18:00
  • 수정 2023.11.01 12:5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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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7월 홍수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중부지역 논콩. 10월 수확기가 찾아왔지만 농업재해보험은 역시나 피해를 보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보험사인 농협손해보험(농협손보)이 손해평가사들에게 “피해율을 높게 잡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는 정황이 나오면서 농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박흥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전북 김제에서 논콩을 재배 중이다. 가혹했던 7월 수해를 맞고서 힘겹게 콩밭을 유지해왔는데, 수확시기에 이르러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왜소한 콩대에 꼬투리조차 제대로 영글지 못해 수확량이 예년대비 3분의1 미만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작황보다 마음을 더 착잡하게 하는 건 보험이다. 육안으로 봐도 70% 가까이 작황이 무너진 상황인데 최근 보험 손해평가사로부터 54%의 피해율을 책정받았다. 가뜩이나 자가부담금 20%를 감내해야 하는데 피해율에서도 추가로 20% 가까이 되는 금액을 못 받게 된 셈이다.

박 전 의장은 “나와 피해가 비슷한 이웃들 중 먼저 수확한 밭을 보면 1,200kg 정도의 콩이 나와야 할 밭(1,200평 기준)에서 200~300kg밖에 나오지 않는다. 900kg 이상 손실이 난 거다. 보험 피해율 54%면 600kg 정도 손실이 났다고 인정한 건데 그럼 나머지 300kg는 내가 떠안아야 하는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박흥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서로 다른 두 밭에서 콩을 뽑아 비교하고 있다. 왼쪽의 콩이 보험 손해평가사로부터 피해율 54%를 인정받은 밭의 콩(실질피해 약 70% 예상), 오른쪽의 콩이 피해율 40%대를 인정받은 콩이다. 한눈에 봐도 피해가 곱절 차이지만 보험사가 인정한 피해율은 겨우 10%p 남짓 차이다.
박흥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서로 다른 두 밭에서 콩을 뽑아 비교하고 있다. 왼쪽의 콩이 보험 손해평가사로부터 피해율 54%를 인정받은 밭의 콩(실질피해 약 70% 예상), 오른쪽의 콩이 피해율 40%대를 인정받은 콩이다. 한눈에 봐도 피해가 곱절 차이지만 보험사가 인정한 피해율은 겨우 10%p 남짓 차이다.

실제 피해와 보험사 평가 간 괴리가 이만큼 크게 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개인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지역 전반에 걸친 공통적 추세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보험사의 의도적인 피해율 축소를 의심하고 있다.

보험사는 통상 재해 발생 시 피해율이 65%를 넘으면 ‘경작불능’ 상태로 간주해 40%(20% 자부담을 제외한 절반)의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지금의 논콩은 수해 당시 피해조사를 표본조사 방식으로 진행해 농가 개별 피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에 농민들이 경작을 지속해온 결과 수확기에 이르러 경작불능 수준의 피해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로선 이제와서 65% 이상의 보험금을 지급하기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초동조사 미흡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손해평가사들이 농민들과 보험사 사이에서 난감해하고 있다는 소문이며 보험사의 압력에 대한 증언도 등장하고 있다. 모 지역에서 손해평가사 일을 하고 있는 A씨는 “농협손보는 지역마다 ‘구역장’을 임명하는데, 구역장들에게 지침이 내려온 걸로 안다. 피해율이 60%만 넘어가면 구역장들이 평가사를 달달 볶는다. 70% 이상 잡아 올리면 바로 전화가 오고 ‘왜 이렇게 높냐’고 욕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피해율을 높게 잡으면 ‘타깃’이 되는 거다. 아무리 피해가 심해도 60% 이하로 내리라는 얘기고, 나도 그런 압박을 느끼고 있다”며 “평가사는 자기 명예를 걸고 평가업무를 하는 건데 소신껏 일하지 못하고 있다. 다들 불만이 많지만 말했다간 업무 배정을 안 해주니 입 밖에 내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박흥식 전 의장은 “올해 내 개인 농사야 다 내려놔버렸다 치지만, 나 하나만이 아니라 전체 농가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문제다. 재해 때문에 농민들이 다들 너무 낙심하고 있는데 농협이 피해율 가지고 장난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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