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터 돌며 지역민 만나는 농민들

전농 강원도연맹, ‘윤석열정권 퇴진 장돌뱅이 실천단’ 활동 나서

“정치싸움만 하는 거여, 개코도 모르면서” 정치권 향한 일갈도

  • 입력 2023.10.26 19:29
  • 수정 2023.10.27 09:34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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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가을걷이의 끝 무렵, 일단의 농민들이 장터에 나타났다. 같은 색 조끼를 맞춰 입은 이들의 손에 들린 큼지막한 팻말과 유인물엔 “윤석열정권 퇴진”,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 금지”,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TRQ(저율관세할당) 농산물 수입 중단” 등이 적혀 있다. 한적한 시골 장터에 등장한 범상치 않은 이들의 정체는 춘천농민회(회장 김덕수) 농민들이다.

춘천농민회가 속한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의장 오용석, 전농 강원도연맹)과 진보당 춘천지역위원회(위원장 김설훈) 등 15명은 지난 24일 춘천시 신북읍 샘밭장터에 모였다. 샘밭장터는 날짜 끝자리가 4, 9일인 날 장이 서는 강원도 오일장 가운데 하나다.

짐작되듯 이들의 장터 방문 목적은 장보기가 아니다. 전농 강원도연맹이 지난 20일 철원군 이평장에서 시작한 ‘윤석열정권 퇴진 장돌뱅이 실천단’ 활동의 일환이다. 농민들은 ‘권력과 이념 싸움에 치중하며 서민의 삶은 뒷전’인 현 정치권의 실정을 지역 주민에게 알리고, 공감과 공론을 끌어내려 한다. 다음 달 11일 전국 규모로 열리는 농민대회를 알리고, 농민회 간부가 앞장서서 농민회 활동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취지도 있다. 양구장, 원주 민속풍물장, 정선장, 홍성장, 화천장, 횡성장도 찾아간다.

논밭이 아닌 주민들 앞에 나선 탓에 이들의 몸짓엔 잠시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농민들은 이내 장터 구석구석을 누비며 상인과 주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대화에 나섰다.

오흥삼 춘천농민회 신북읍지회장과 상인 전정자씨가 대화하고 있다. 
오흥삼 춘천농민회 신북읍지회장과 상인 전정자씨가 대화하고 있다. 
김설훈 진보당 춘천지역위원장이 상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설명하는 모습. 
김설훈 진보당 춘천지역위원장이 상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설명하는 모습. 
강석헌 전농 강원도연맹 사무처장이 한 상인에게 유인물 건네는 모습. 
강석헌 전농 강원도연맹 사무처장이 한 상인에게 유인물 건네는 모습. 
전농 강원도연맹 장돌뱅이 실천단이 손팻말을 들고 장터를 돌고 있다. 
전농 강원도연맹 장돌뱅이 실천단이 손팻말을 들고 장터를 돌고 있다. 

오흥삼 춘천농민회 신북읍지회장은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건네며 “지금 정부가 검찰과 관련해 너무 막 나가잖아요. 이념 논쟁도 심하고. 농산물 가격은 하나도 안 올랐어요. 정부가 민생에 더 힘쓰라고 농민회에서 만들어 봤어요”라고 설명했다.

오 지회장의 말을 유심히 듣던 상인(농산물 판매) 전정자씨가 화답했다. “올해는 철기가 비가 많이 와서 망가지고, 이래서 망가지고, 저래서 망가지고 많이 망가졌어. 나도 농사꾼이야. 내가 농사짓다 너무 힘들어서 이걸(장사) 해. 이걸 해도 힘들지. 어떤 사람은 `비싸다'고 그래. ‘비싸면 먹지 말아요’ 그래.” 오 지회장이 “농민들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죠”라고 맞장구치자 전정자씨는 “비싼 거 아니야. 그럼 그럼. 인건비가 지금, 사람 사서 할라믄 사람 살 수 있어? 옛날에 우리 농사지을 땐 ‘일꾼 열만 얻어 와라’ 하면 열다섯도 얻어서 줄레줄레 왔어”라고 답한다. 오 지회장이 “윤석열 대통령, 정치인들이 이념 전쟁하지 말고 민생을 챙겨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다”라고 지적하자, 전정자씨는 속 시원하게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정치싸움만 하는 거여. 개코도 모르면서. 농사꾼 심정은 농사꾼이 알지 누가 알겠어? 그 사람들이 뭐 농사지어? 정치만 신경 써서 싸움질만 하지.”

반면 정부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불편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장터 포장마차에서 만난 한 농민은 말했다. “솔직히 보조금 같은 것도 다 없앴으면 해. 농산물이 제값 받아서 자유경쟁하고 그래야 하는 거지.” 농민회의 뜻에 동참하진 않지만, 농산물 가격이 정당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으로 읽힌다.

첫 방문지인 철원 이평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강석헌 전농 강원도연맹 사무처장은 “철원은 접경지역이고 군인 인구가 많아 긴장했지만, 윤석열 퇴진 요구에 큰 반감은 없는 편이어서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빨갱이’라고 하는 할아버지 한 분 정도 만났을 뿐 상인 대부분은 좋아하셨다. 극소수였지만 ‘왜 이제야 이런 걸 돌리냐?’하는 분들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날 김덕수 춘천농민회장은 상인과 주민을 향해 “올여름 그렇게 어렵고 힘든 기후위기 속에서도 농사지었지만 손익을 따지기도 전에 벌써 한숨부터 나온다”라며 “생산비가 오르면 당연히 농산물 가격도 그에 따라 오르는 게 이치인데 이상하리만큼 쌀값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1월 11일 서울에 가 생산비는 올랐는데 왜 쌀값은 떨어지고, 우리 농민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는지, 정부는 무얼 하는지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자 한다.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장터를 찾은 하원오 전농 의장은 “전체 물가가 오르면 농산물부터 때려잡아 시골에선 먹고살 수 없을 정도로 만들고 있다. 손님도 별로 없는 장터를 지키느라 고생하는 상인 여러분께 위로 전한다”라며 “지역 장터가 북적거리고 사람 살맛 나는 세상이 와야 않겠나. 11월 11일 농민, 노동자, 서민이 모여 갈등만 양산하는 정치, 대통령·국회의원을 내기 위한 정치가 아닌 서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하라고 촉구하겠다. 힘을 보태주시라”라고 당부했다.

오용석 전농 강원도연맹 의장은 “장날엔 함께 모여 흥성거리며 막걸릿잔 기울이고 이야기도 나누는 날인데, 많은 지역이 예전 장날만큼 못하다. 사람도 없고 장사도 잘 안되니 마음이 아프다. 농민들은 농사지어 남는 건 고사하고 생계를 걱정하고 장사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다”라며 “11월 11일, 단지 농민들만의 목소리를 높이려 서울에 가는 게 아니다. 국민 모두 건강하게 잘 살 권리를 짓밟고 있는 정치권과 공정과 상식을 말했지만, 국민 삶은 안중에도 없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강력히 경고하고 국민 삶에 귀 기울이라고 요구하겠다. 이에 적극 귀 기울여 주시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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