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서울 남산① 남산공원에 ‘식물원’이 있었다

  • 입력 2023.10.22 18:00
  • 수정 2023.10.22 19:3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서기 2002년 6월 초순의 어느 이른 아침,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쪽의 남산공원 입구에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와 멎더니 5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그가 서둘러 들어간 곳은 남산 식물원이다. 식물원에 들어간 그는 누군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 이 녀석들 밤새 잘 있었는지 문안 인사를 좀 받아볼까. 어이구, 이 녀석은 이파리에 주근깨가 생긴 걸 보니 영양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로구나. 넌 또 왜 맥이 빠져 있는 것이야? 알았다, 알았어. 목이 마르다 이 말씀이지?

식물원의 통로를 따라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마치 자식들의 이마를 짚듯이 나무나 화초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이 사람은 남산 식물원의 최상인 원장(1945년생)이다. 그는 식물원의 열대 식물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실제로 식물들이 그에게 어떤 대꾸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줄기며 이파리며 꽃잎들을 살펴보면서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면 나무나 화초들의 건강상태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혹시 지난밤에 어떻게 되지 않았나 문안 인사를 주고받는 거지요. 식물은 표현을 못 하잖아요. 수시로 관찰을 해서 영양 상태가 안 좋은 녀석은 거름을 주고, 병든 녀석은 치료해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그런데 자식 같은 요 녀석들을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네요.”

최 원장은 금년(2002년) 6월 30일, 30년을 넘게 붙박이로 일해온 남산 식물원을 떠난다. 정년퇴임이다. 말이 30년이지 학교 다니고 군대 갔다 온 시간을 제외하면 평생을 남산 식물원에서 보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가 식물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때가 1971년이었다.

“당시에는 식물원이 1호관만 있었어요. 면적이 200평가량 됐고, 식물도 160종 600여 본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후로 2, 3, 4호관이 잇따라 증축되면서 온실 면적이 827평으로 늘고 식물도 총 82과(科) 789 종(種) 8,000여 본(本)으로 늘어난 겁니다. 엄청나게 커졌지요,”

최상인 원장이 남산 식물원에서 보낸 30년 세월 동안, 식물원의 규모만 그렇게 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서울의 상징인 남산의 모습도, 그리고 남산을 찾는 사람들의 행태도 크게 변했을 터이다. 정년퇴임을 앞둔 최상인 남산 식물원장과 함께 지난 시절, 남산공원에 얽힌 얘기들을 더듬어보기로 한다.

최상인 원장은, 남산 식물원의 연원을 거론하자면 베트남전 파병에 관한 얘기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식물원과 베트남 전쟁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1960년대 말의 어느 날,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전투부대의 연병장으로 가보자.

-김 병장님, 전투하러 정글에 들어간다면서 삽하고 곡괭이는 왜 들고나오라는 겁니까?

-바보야, 베트콩들이 땅속에 숨겨놓은 지뢰를 캐러 가는 거야.

-지뢰를…삽이나 곡괭이로 캔단 말입니까?

-그래 인마. 요즘 밥맛도 없고 부식도 시원찮으니까 지뢰라도 캐다가 삶아 먹어야지.

말년 병장과 일등병이 그런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소대장이 앞으로 나선다.

-소대원 전체 주목! 오늘 우리가 수행할 작전명은 `식물채집'이다. 알겠나? 너희들 국민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 숙제로 식물채집 해봤지?

병사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소대장이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다.

-잘 들어라. 이곳 월남에 있는 열대식물을 우리만 보고 가기에는 너무 아깝잖은가! 그래서 고국으로 실어 보낼 대표적인 식물들을 캐는 것이 지금부터 우리가 수행할 작전이다. 오늘 우리 소대가 채집할 식물들은 야자수 나무, 고무나무, 바나나 나무, 소철….

그렇게 채집한 열대 식물들은 귀국선을 통해 한국으로 실려 왔고, 주월 한국군 사령부가 기증하는 형식으로 서울시에 제공했다. 바로 그 열대 식물들을 기본자산으로 삼아서 1968년 12월 23일, 한국 최초의 식물원인 `남산 식물원'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남산 식물원의 제1호관은, 대부분 당시 파월장병들이 채집해서 보낸 열대식물로 채워졌던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