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 시대 ‘정철균법’을 만들자

  • 입력 2023.10.15 19:28
  • 수정 2023.10.17 17:31
  • 기자명 이영수 경북 영천 복숭아재배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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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경북 영천 복숭아재배 농민
이영수 경북 영천 복숭아재배 농민

추석 다음 날 단톡방에 뜬금없는 글이 올라왔다.

‘철균이가…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감을 못 잡고 이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더니 ‘죽었다. 살아서 이 카톡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답이 왔다. 그제야 부랴부랴 진주에 전화해보니 철균이가 추석 당일 오후에 단감밭 농막에서 잠을 자다 화재가 발생했고, 미처 피하지 못해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아… 얼마 전부터 얼굴 한번 보자고 그렇게 연락했는데 못 본 게 미안키도 하고, 뭐 한다고 추석 당일까지 단감밭에 올라갔는지 원망도 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 농사꾼들의 처지가 비참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철균이의 두 아들 가온이(중2) 해온이(초5)를 만났다. 철균이가 자랑스러워하던 해가온 농장 이름이 두 아들 이름에서 왔음을 그때 알았다.

오열하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엄마의 손을 더 꼭 잡던 해온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졌다. 농민가가 흘러나왔을 때 가온이 해온이가 울먹이면서도 힘차게 팔뚝질을 할 때에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철균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핵심 농민활동가였다. 추도사를 한 대학 선배는 철균이가 야생마 같은 사람이라 했다. 민주당으로 출마한다는 내게 욕을 한 바가지나 퍼부어놓고는 말없이 후원금을 건네주던 품 넓은 활동가였다. 범띠 동갑인 부여 혁주, 거창 훈규, 강원도 석헌이와 추석 쉬고 남해 점숙 총장님께 쳐들어가 소주 한잔하자던 정 많은 친구다.

도대체 고인은 왜 추석 명절 당일까지 단감밭에 올라갔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리 만들었을까?

탄저병 때문이었다. 탄저병은 과일 일부분에 까만 점이 생겨 점차 썩어가는 병으로 비가 많은 해는 급속히 확산이 된다. 일단 탄저병이 발병하면 아무리 약을 친다고 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번져 한 해 농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특히 올해는 이상기후로 수확기에 비가 지속적으로 내려 자두, 복숭아, 사과할 것 없이 노지과수들은 탄저병에 막대한 피해를 받았다. 자두 농가들은 이상기후로 꽃이 일찍 피는 바람에 개화기 서리피해로 결실 자체가 되지 않아 열매 없는 빈 나무가 많다. ‘한 해 농사 쉬었다’고 할 정도다. 복숭아도 봄철 개화기 결실피해 이후 수확기 내리는 비로 당도 저하는 물론 탄저병이 번져 수확할 게 없었다. 또 사과도 지속적인 비로 탄저병과 함께 잎이 떨어지는 갈반현상이 생겨 농가들이 울상이다. 모두 이상기후 때문이다. 사실 농민들이야말로 이상기후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최대 피해자들이다.

농민운동가 정철균의 죽음 배후에는 척박한 농촌 현실과 이상기후가 있다. 올해 이상기후로 개화기 단감 결실이 적어 소득은 줄어들 것이 뻔한데 애들 밑으로 들어갈 돈은 점점 많아지고 단감밭 산다고 농협에 빌린 돈은 몇억원은 되었을 테다. 원금과 이자 상환이 버거웠을 거다. 하루하루 농자재비와 인건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애지중지 키운 단감이 수확을 얼마 앞두고 무시무시한 탄저병이 들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철균이는 추석 전날에도 후배와 같이 단감밭에서 병든 단감을 따냈다고 한다. 그래서 명절 당일도 차례만 지내고 단감밭으로 일하러 갔으리라.

안타깝게도 철균이가 사고를 당하기 며칠 전 평소 고인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던 젊은 복숭아 농민이 기후위기 직격탄을 맞고 부모님한테 도저히 농사 못 짓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한다.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에도 농민들이 마음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걸까? 부자는 안 되어도 좋으니 그저 먹고 살게만 해 달라는 게 우리 농민들의 바람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에도 실질적인 영농비가 보장되는 ‘정철균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도 철균이도 추석 명절 하루쯤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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