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산물 공급과잉의 시대

  • 입력 2023.10.15 18:00
  • 수정 2023.10.15 19:08
  • 기자명 김형표(제주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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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표(제주 성산)
김형표(제주 성산)

소비자들의 체감가격과 달리 한국농산물 시장은 공급과잉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농산물 가격이 안정되거나 더 하락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공급이 과잉되고 있는 것인지, 공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답의 요지는 이렇다. 먼저 유가와 종자·비료·농약 등 농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인건비 역시 급격히 올라 농산물 가격의 상승은 예견된 일이었다. 공급이 줄거나 수요가 늘거나와 같은 시장의 기본 경제논리에 따라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생산비 증가가 농산물 가격에 반영된 것이다. 마치 아파트 건설현장의 시멘트 가격과 철근가격이 올라 평당 건축비가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시멘트와 철근의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시멘트와 철근을 생산하는 생산비 자체가 원자재상승과 인건비상승, 운송료상승 등으로 가격인상 요인이 발생한 것과도 같다.

다만 동일한 경제 논리에 의해 일어나는 동일한 현상에 비해 소비자들의 체감이 다른 것은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보수적 인식 때문이다. 인건비나 자재비의 생산비 증가 요인이 농산물 가격에 반영되는 현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물론 정부의 농산물 담당자들 역시 농산물 가격에 늘어난 생산비가 반영되는 현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농산물 가격의 상승이 물가상승이라는 용어로 자주 둔갑한다. 늘어난 밥상물가 상승 등의 용어가 그렇다.

이러한 인식에는 언론도 큰 책임이 있는데, 폭우나 태풍 등의 영향으로 배추의 생산량이 급감해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값이 치솟을 때마다 ‘금값배추’ 같은 용어를 남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비슷하게 폭염으로 인해 노지의 상추들이 망가져 상추값이 오르면 삼겹살보다 비싼 상추 같은 제목들로 도배한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기상재해로 인해 생산량이 급감하고 공급이 줄었을 때,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막대한 이익을 내는 농가들은 없다. 오히려 농산물 유통 상인들이 그 이익을 전부 가져갈 때가 많다.

언론이 선정적인 제목을 달면 달수록 오히려 농산물 유통시장은 파괴된다. 국민의 정상적인 인식을 방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생산비와 무관하게 배추는 포기당 얼마, 무는 얼마, 양배추는 얼마여야 한다는 가격제한선이 있고,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비싸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농가의 고민은 깊다. 원자재와 인건비, 유가 등의 상승을 정부와 소비자 어느 곳에서도 배려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재 한국의 농업 생산자들은 한국인이 필요한 대부분의 농산물들을 생산해 낼 기술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한 농산물의 생산시스템이 기계화되고 있고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사용한 재배기술이 확립되어 점점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었다. 농촌의 젊은 농부와 인구가 그동안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농산물의 재배 면적과 생산량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기계화와 대량 재배로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실례로 손으로 씨앗을 심던 월동무와 당근 같은 채소들이 트랙터를 이용한 기계 파종으로 하루에 많은 양의 파종이 가능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감자조차 트랙터 부착형 파종기를 이용해 하루에 많은 면적을 파종할 수 있을 정도다. 농촌의 모자란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생긴 진풍경이다. 사람은 부족한데 생산량은 늘어나는 특별한 현상이 농촌에서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많은 농산물들을 한국의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다. 한국의 농산물 수요자에서 개인 가정들은 이미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외식문화와 1인 가구 등의 소규모 가정이 늘어나 더 이상 가정에서 채소를 요리해 먹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사회는 농산물 소비를 늘일 방법을 찾을 것인지, 생산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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