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촌정책, 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을까

  • 입력 2023.10.15 18:00
  • 수정 2023.10.15 19:31
  • 기자명 유정규 행복의성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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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규 행복의성지원센터장
유정규 행복의성지원센터장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보람이 없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돼 있다. 이 말은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불행하게도 농촌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농촌에는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왜 농촌정책(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게 됐을까?

우리나라의 농촌개발정책은 1950~1960년대의 농촌지역사회개발(Community Development)사업을 거쳐 1970년대는 생활환경개선과 소득증대, 정신개혁을 목표로 하는 새마을운동이, 1980년대는 도농통합개발과 정주환경조성을 내건 군단위종합개발사업을 표방했다.

1990년대는 중심마을(문화마을)개발과 주택, 도로, 상하수도와 같은 면 단위 생활편의시설 개선을 목표로 하는 면단위정주권개발을 추진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농촌어메니티와 농촌관광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마을단위개발사업(녹색농촌체험마을, 전통테마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 산촌생태마을조성 등)이 전국적으로 시행·확산됐다.

2000년 이후에는 기존의 중앙주도·하향식에서 지역·주민주도의 상향식으로 농촌정책 추진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렇게 됨으로써 지역주민의 입장에서는 농촌정책(사업)이 단순히 ‘위에서 하는 행정의 사업’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갖는 ‘자기 (마을)사업’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추진방식의 변화를 일찍부터 깨닫고 효과적으로 대처한 마을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른바 ‘스타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 행정 역시 이러한 중앙정부의 정책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농촌의 고령화와 과소화는 빠르게 심화됐고,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주체는 고갈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지역의 정책수용역량을 초과하는 새로운 정책이 등장했고, 지자체에서는 어떻게든 더 많은 정책(사업)을 지역으로 유치하는데 더욱 더 집중하게 됐다. 그것이 지자체의 역량으로 평가받게 됐으며 지역주민들은 그러한 능력(?)있는 단체장을 다음에 또 지지하는 순환체계가 고착됐다. 지자체(장)도 지역주민도 정책(사업)의 성공적인 추진보다는 그 정책(사업)의 유치 자체가 목표가 돼버린 것이다.

현 정부에서는 어떠한 농촌정책이 기다리고 있을까? 현 정부 들어 제정·시행됐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는 농촌 관련 법률을 보면, 「인구 감소지역 지원 특별법(2022.6.10.제정, 2023.1.1.시행)」, 「지역 농림어업 발전사업 협력촉진에 관한 법률(2022.12.27.제정, 2023.12.28.시행)」, 「농촌공간의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2023.2.27.제정, 2024.3.29.시행)」, 「농촌지역 공동체기반 경제·사회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2023.8.16.제정, 2024.8.17.시행)」 등이 있다.

이 법률들이 시행되면 지자체에서는 각각의 기본계획 혹은 추진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관련 사업의 심의 혹은 의견수렴을 위한 회의체를 설치해야 한다.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기존의 업무 외에 새로운 업무가 추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심각한 것은 관련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 담당자도 정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주민주도의 상향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지역(마을)에 필요해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유치된 정책(예산)이 있으니 사업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사업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고, 실패하더라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믿고 싶진 않지만 농촌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농촌정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의 현실과 수요를 고려하는 정책사업, 지역의 수용역량에 조응하는 정책사업, 지역의 수용역량을 키우는 정책사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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