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가을걷이

  • 입력 2023.10.08 18:00
  • 수정 2023.10.08 20:46
  • 기자명 조경희(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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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전북 김제)
조경희(전북 김제)

어느새 가을. 볼 일이 있어 가까운 장에 다녀오면서 보니 벼 수확작업을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마음이 바쁜 농민들이 추석 연휴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가을걷이를 시작한 것이다.

가을걷이의 시작은 곧 벼 가격결정, 정부 양곡정책에 대한 지난한 싸움도 함께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벼 매입가격을 생산자인 농민이 직접 결정하거나 농협과 함께 결정하지 못하는 불공정함이 계속되는 한 이 싸움 또한 해마다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미 현장에선 올해 매입가격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매입기관인 농협과의 소통을 진행하고 있지만 수확이 시작된 현재까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농협의 결정, 정부의 결정을 지켜보며 올해는 또 어떻게 싸워야 할까를 걱정하는 것이 농사일보다도 힘겹다. 언제까지 농사의 풍흉과 관계없이 마음만이라도 풍성해야 하는 수확의 계절이 한편으론 힘겨운 싸움의 계절이 돼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이럴 때 농민들은 노동자들의 임금협상이나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는 최저임금 등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생산자와 농협이 함께 매입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농민들도 노력과 요구를 꾸준히 해왔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절차 혹은 구속력을 갖는 결정기구가 규정과 제도로 보장된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농민과 농협이 평행선을 달리듯 함께 마주 앉는 것조차 힘든 이유는 벼 매입가격이 쌀값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양곡정책으로 제시한 시장의 쌀값에 매입가격을 맞춰야만 하는 모순 때문이다.

농민은 벼 생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 즉 토지이용비와 농자재 비용, 농기계 비용, 고용 및 자기 인건비 등을 종합한 생산비용을 기준으로 적정한 이익을 더해 매입가격이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협은 매입한 벼를 쌀이나 원료곡으로 판매한 뒤 남는 수익으로 매입·보관·가공·판매 등 사업운영 전반에 들어가는 비용 및 직원 인건비, 감가상각 등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 이익이 남는 가격으로 매입비용이 결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은 가격결정은 조합의 적자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조합원인 농민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농민과 농협이 생각하는 가격결정의 기준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농민이든 농협이든 손해를 보면서 농사짓고, 사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민이 기준으로 정한 생산비용과 농협이 기준으로 삼는 사업에 있어서의 비용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사실상 벼 매입가격 결정에 있어 농민과 농협이 생각하는 기준을 모두 만족하기 위해 필요한 변수는 결국 시장의 쌀값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장의 쌀값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의 기준은 무엇일까? 정부는 올해 마치 대단히 큰 역할을 한 것 마냥 쌀값이 20만원 수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왜 쌀값이 ‘20만원’이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농민의 벼 생산비 상승이나 농협의 사업 손실 같은 것은 다 헛소리일 뿐이고 쌀값은 그저 20만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현 정부뿐만 아니라 지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정부에서 폭락했던 쌀값이 논 타작물재배 지원사업 등을 통해 겨우 20만원 수준으로 회복되자마자 관련한 사업을 폐지해 다시 하락하게 만든 것이 불과 2년 전 문재인정부 때의 일이고, 법과 제도를 통해 쌀 생산량을 줄이고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던 현 정부도 결국 쌀값이 20만원으로 회복한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니 무슨 할 말이 필요할까?

우리나라 양곡정책에서도 한동안 적정한 쌀값에 대한 논의를 거쳐 목표가격을 정한 때가 있었다. 가격이 적절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쌀 생산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2005년부터 2019년까지 변동직불금의 지급 기준이 되는 목표가격을 정부와 국회의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쌀값 20만원이 왜 잘못된 것인가? 당시의 목표가격을 보면 명확해진다. 변동직불금이 없어지기 전 최종 적용된 2019년의 목표가격은 21만4,000원이었다. 2023년 현재 생산비의 폭등으로 등허리가 휘어지는 농민들과 만성 적자를 호소하는 농협의 어려움은 어디 가고 5년 전보다도 못한 쌀값 20만원 타령을 되풀이하는 정부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농민들의 바람은 5년 전, 10년 전, 그 이전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쌀값은 농민값!’이다. 생산비가 보장되는 쌀값, 그것이 최저가격이든, 목표가격이든, 공정가격이든 명확한 기준을 갖고 논의를 통해 함께 결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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