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데

  • 입력 2023.10.08 18:00
  • 수정 2023.10.08 20:46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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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추석연휴가 마무리돼 갑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태어나고 세상을 뜨지만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태어나고 세상을 뜨는 건 각별한 느낌입니다. 설날이 생일인 막내 동생, 20년 전 추석을 하루 앞두고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 열사…. 결혼이나 명절을 앞두고 초상이 나면 방문은 하지 않고 조의금만 보내는 게 다반사인 농촌에서, 쓸쓸하게 장사를 지내야하는 것 같아 심난합니다.

이번 연휴에도 아들과 딸 초등학교 동창들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적은 농촌에서 초등학교 동창들은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11년 이상을 같은 교실에서 복닥거리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크고 작고 좋고 나쁜 일들, 낳고 자란 집안의 가족들이 거치고 겪어낸 사건들, 가족 관계까지 알 수밖에 없는 관계라 그 삶이 교실 뒤에 그려진 아이들의 그림처럼 빤히 보입니다.

예쁜 딸 세 명과 잘 생긴 아들 한 명을 둔 전OO님은 유치원 학부모회의를 할 때는 조용히 앉아 있다 청소시간에는 유치원 곳곳을 깔끔하게 청소했고, 끝나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네 명과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거들먹거리지도 않았고 친구에게 맞았다고 핏대를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농사로는 감당할 수 없어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10여 년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 크며 볼 일이 뜸하고 소식도 못 듣다 다시 전OO님을 본 것은 2020년 가을, 어떤 병실에서였습니다. 농촌의 고령화, 공동화 추세에 어린이집 원아수도 뚝뚝 떨어졌고 고민 끝에 1년간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던 때였습니다. 야간에는 이론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병원으로 실습을 가던 그 때, 실습 첫날 병실의 환자들 체온, 맥박 수 등을 서투른 솜씨로 재고 있는데 어떤 환자가 “남OO 엄마 아니세요?” 하고 묻습니다. 낯선 그 곳에서 딸 이름 소리에 놀라 쳐다보았는데 그 환자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수습을 하고 병실을 나와 방문 앞의 이름을 보니 전OO님인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병실에 찾아가 이야기를 하며 다시 모습을 보니 젊을 적 예뻤던 모습은 다 없어지고 노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허리는 굽었고 머리카락은 희고 뻣뻣해졌으며 눈동자와 목소리만 내가 알던 대로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10여 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실습 첫 날이 끝나고 병실에서 마주한 전OO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아들, 딸과 오랫동안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퇴원해 집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던 중 국과 반찬을 만들어 식사준비가 어려운 주민들에게 배달을 하게 돼 대상자들을 면담하기 위해 전OO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집 밖으로 나온 모습은 병원에서의 모습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국과 반찬 배달을 하면서 목소리 듣고 안부 챙길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근근이 살아가며 간신히 떠 넣는 밥 한술을 촉촉이 적셔줄 국이 되고, 걸음 옮길 힘을 주는 반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김장김치 통을 현관 앞에 두고 나오며 겨울을 날 수 있는 든든함의 일부라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깨끗하게 닦여진 양은 냄비를 보며 아픈 와중에 이런 힘이 나올까 의문도 들었지만 이렇게 점차 회복이 되겠지하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약 한 달 전부터 배달을 가면 늘 빈집이었습니다. 집안은 안 좋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반찬통을 가지고 들어간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빈통을 들고 나왔습니다. 걱정과 궁금함 끝에 요양병원에서 한동안 지내다 이번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네 자녀의 엄마이자 한 가정의 주부, 농촌의 주민으로서 힘겹게 버텨왔는데 그만큼의, 아니 그만큼의 1/10이나 1/100 또는 1/1,000의 대접은 받고 세상을 떠났을까 생각해보면 절대 아니다 싶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데, 그녀가 살면서 일궈 왔던 모든 것들은 다 공짜로 받쳐진 것 같아 답답하고 먹먹합니다. 젊은 날에 같이 애썼던 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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